나는 첫눈을 밟고 거닌다

                                                               예세닌


나는 첫눈을 밟고 거닌다.
마음속에는 확 불타오르는 힘의 은방울꽃.
바람이 나의 길 위에서 푸른 촛불처럼
별에 불을 켰다.

나는 모른다. 그것이 빛인지 어둠인지?
수풀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바람인지 수탉인지?
어쩌면 그것은 들판에 겨울이 오지 않고
백조들이 풀밭에 내려앉은 것이리라.

오, 하얀 물면이여, 너 참 아름답구나!
가벼운 추위가 내 피를 덥게 하고 있다!
못 견디게 내 몸뚱이에 꼭 끌어안고 싶어지누나.
자작나무의 드러난 가슴을.

오, 숲의 조는 듯한 뿌연함이여!
오, 눈에 덮인 밭의 쾌활함이여!
못 견디게 두 손을 모으고 싶어지누나.
버들의 나무 허벅다리 위에서.

                                                                 - 세르게이 예세닌, 《자작나무 숲에서》, 박형규 역, 열음사.
 

지난 명절에는 오랜만에 제법 눈이 내렸다. 첫눈이 오면 생각나는 아름다운 시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따스함이 묻어나기도 하고 서늘함에 옷깃을 여미게도 한다. 나는 북극의 광활함과 따스함에 넋을 놓기도 하는데 그건 오로지 러시아의 시인들 때문이다. 러시아 대지의 영혼, 예세닌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행복하게 느껴진다. “마음속에는 확 불타오르는 힘의 은방울꽃이라니!” 매혹적이고 섹시하다. 버들의 나무 허벅다리 위에서 자작나무의 드러난 가슴을 애무하는 바람이 내 피를 덥게 한다. 저 바람 부는 자작나무 벌판은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으고 싶어지게 한다. 아름답다. 매혹에 온몸이 무장해제 당한다.

한승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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