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왼눈과 오른쪽 눈이 졸지에 생이별했다.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건너갈 수 없었다. 모든 삼촌과 모든 이모가 헤어졌다. 막내 데리고 잠시 고개 너머 누이 댁에 건너간 어머니를 더 이상 뵐 수 없었다. 찾으러 갈 수도 없었다. 흰 구름과 산새들은 오가는 데 사람은 갈 수 없다고 했다. 가는 길이 막힌 것이다.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가는 길이, 왼눈에서 오른쪽 눈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다.

1879년, 일본은 유구국(流寇國)을 오키나와로 이름 바꾸고 일본에 편입시켰다. 이어 한반도 조선을 차지(1910년)했다. 1945년, ‘꼬마와 뚱보’(일본에 떨어진 원폭 암호명)에게 매 맞은 일본이 패망했다. 이때 오키나와가 된 유구국은 일본에 귀속되었다. 우리는 독립했다. 이를 두고 ‘광복’(光復)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 ‘광복’이란 일본패망의 다른 이름일 뿐, 민족에게는 더 큰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잠시 빛이 비추이는 듯했다. 우리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 이미 강대국들은 ‘커다란 어둠의 틀’을 짜놓고 있었다.

2차대전이 한창인 1943년 9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추축국 중 이탈리아가 항복한다. 대전의 끝을 예견한 미국, 영국, 소련, 중국 수뇌부는 11월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은 전쟁 수행과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한다. 이 가운데 특별조항으로 ‘노예상태의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것’을 결의한다. ‘카이로 선언’이다. 이어 1945년 2월, 흑해 연안 소련 영토 얄타에서 독립을 협약한 카이로선언을 재확인한다. 5월 7일, 독일이 항복한다. 7월 26일, 독일 ‘포츠담선언’(일본 무조건 항복 권고)에서 카이로선언 이행 재차 확인.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8월 8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 8월 10일 왜왕 히로히토 연합군에 포츠담선언에서 정한대로 무조건 항복의사 전달. 15일 항복. 이렇게 우리는 독립했다. 그러나 아뿔싸! 우리 힘으로 얻은 독립이 아니었다.

9월 2일, ‘연합국 최고사령부 미합중국 육군부대 총사령관 지시 제1호’는 군사분계선 삼팔선을 책정한다. 북위 38도선 이북 일본군은 소련군에게 항복, 이남은 미군에게 항복을 지시한 것. 이렇게 남과 북의 정치적 군사적 경계선이 생겨난다. 이는 이데올로기 냉전(Cold War)의 상징이 된다.

(1절)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땅을 가고 오건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헤멘다

(2절) 아 꽃 필 때나 오시려느냐 아 눈 올 때나 오시려느냐 보따리 등에 메고 넘던 고갯길 산새도 나와 함께 울고 넘었지 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친다

(3절) 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아 어는 때 없어지려느냐 삼팔선 세 글자를 누가 지어서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더냐 손 모아 비나이다 손모아 비나이다 삼팔선아 가거라
- 이부풍 사/ 박시춘 곡/ 남인수 노래(1948) (61년 재녹음 때 반야월 가사 2절로 추가)

산이 막혀 못 오는 줄 알았는데 결국 왼눈과 오른쪽 눈은 서로를 찌르고, 막내는 무서운 적이 되었다. 아! 어머니-.

 

김진묵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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