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행복

                                                                   심종록


황사가 시야를 가린다. 세상이 보이지 않으므로 산수유 꽃 핀다 더는 기다릴 여력이 없었는지 막무가내
타클라마칸에서 발원한 모래먼지는 시야만 가리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 증상을 복합적으로 안긴다.
21시간 전; 산수유 꽃처럼 신열이 올랐다 해열제를 복용했으나 허사였다
9시간 전; 불면으로 뒤척이다가 일어나 창백한 거울 속 유령과 대면했다
4시간 전; 카카오톡으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3시간 전: 중년남자의 충혈된 눈빛
1시간 59분 전; 청소차가 출입문을 가로막고 선 모텔 후문으로 여학생의 손을 잡고 나오는 교수 1시간
58분 전; 아들 학자금 대출을 받은 여자가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려고 거래 은행으로 달려가다가
00시 00분; 딱 마주치는 골목 1초 후; 봄에는 그런 일이 무시로 일어난다 물기와 불량과 쾌락과 의무와 맹목이 뒤섞이는 봄
한 세상 후; 네 손 움켜쥐고 세월이 그어놓은 무단출입 금지선을 넘다가 문득 뒤돌아 보면

산수유 꽃 마른 강변, 햇살만 엎질러진다
 

봄, 행복.
황사로 대변되는 것들,
그것들로 세상이 보이지 않으므로 막무가내로 산수유 꽃이 피고 있다고 한다.

봄의 전령사라 할 만한 산수유 꽃을 앞세우며 봄이 오기는 오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오는 봄으로 우리가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어딘지 세상은 불온하여 불길하고 갈피를 잃은 일상은 피폐하고 황량하다.

우리에게 봄은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경계에 있는 무단출입 금지선인가?
친애하는 사람이, 분에서 새싹을 밀어 올린 수선화 사진을 보내왔다.
노란 꽃을 피우는 수선화라고 한다.
노랑은 희망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한다.

그래 그런지, 봄에 가장 먼저 오는 꽃들 대부분이 노란색을 띠고 있다.

봄을 보았다.
제발, 햇살만 엎지르는 봄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는 봄을 맞아 볼 일이다.

유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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