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 노동조합

                                                          권준호


빨대가 꽂혀 숨넘어가지 않을 만큼 쓸개즙을 도둑맞는
곰도 보았다만 기다리던 봄인가 싶으면 옆구리 구멍 뚫고
하얀 피 뽑아대는 그대들의 탐욕성 위장병은 언제 나을 것
인가.

곰취, 참취, 수리취, 누룩치, 고비, 달래, 고들비, 두릅
이며 돈나물, 참나물, 동이나물까지 모가지가 똑똑 꺾일
테지만 종내 푸르러지고 말리니

봄눈 오는 날,
국민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고로쇠들의 헐벗은 침묵시위.
 

봄이 되면 인간들은 산을 착취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착취당하는 식물은 고로쇠나무다. 강원도의 고로쇠 수액 채취는 경칩을 전후해 이루어진다.
고로쇠 수액은 위와 신장, 뼈 등에 좋단다. 우리나라 사람들 몸에 좋다면 물불을 안 가린다. 교수쯤 되는 전문가가 티브이에 나와 바퀴벌레가 정력에 좋다고 한 마디 하면 바퀴벌레도 잡아먹을 판이다.

산나물 철이 되면 산은 관광버스를 타고 떼거지로 몰려오는 도시인들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잎만 뜯어야 하는 취나물도 뿌리째 뽑아버린다. 두릅 순을 따기 위해 가지째 잘라버린다. 새끼 더덕도 가차 없이 캐버린다. 비정규직이란 딱지를 붙여 노동을 착취하고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는 악덕재벌들 같다.

고로쇠도 살고, 곰취도 살고, 오소리도 살아야 산이 산다. 산이 살아야 인간도 산다. 고로쇠 노동조합의 침묵시위에 귀 기울일 때다.

정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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