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을 끝냈으니 이제 ‘천사평’에 갈 일도 없으리라.

그러나 오늘 이곳 천사평 소박한 텐트 속에서 아내가 플루트 연주에 빠져있는 동안, 난 지난 3년이 녹음된 밭고랑 소리를 조용히 들어본다. 농사를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퇴직 1년 전과 퇴직 후 2년이다. 그 전엔 임대를 주어 쌀 3가마를 받았는데, 퇴직 1년 전부터 농사를 직접 짓기로 했다. 외지에서 직장생활 하느라 직접 경작을 못했는데 퇴직 직전 고향으로 발령을 받아 가능했다. 기왕이면 나름 낭만적인 농사꾼이 되고 싶어 경지면적이 1,004평인 것을 기억창고에서 꺼내 그냥 한글로 천사평이라 불렀다. 아버님 제사 때 형제들에게 공표했더니 모두들 박수치며 좋아했다.

첫해 논농사는 물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엄니의 당부를 수령님 교시처럼 실행했는데 참으로 어려웠다. 논둑 폭은 넓은데 예전처럼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푸석해진 틈을 타 두더지와 들쥐들이 논둑에 그들만의 관광전용 터널공사를 하는 바람에 매양 물이 새어 물관리가 영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쌀 수확을 했는데 농기계 비용 등을 제하니 적자였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물 관리와 제초(이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외엔 없었다. 로터리치기, 논갈이, 파종, 모심기, 탈곡, 건조, 운반까지 모두 기계나 전문가의 손으로 이루어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우리집 형제들의 풍부한 노동력과 퇴직한 나와 아내가 부지런을 떤다면 가능할 것 같아 논에서 밭으로 전향을 시도했다. 그런데 의외로 반대가 엄청 심했다. 엄니는 옛적 가난한 때 밭일을 생각하시곤 결사반대였다. 누차 얘기해도 안 되니 나중에는 분노가 폭발하신 것 같았고 동생들까지 동원해 반대표시를 늦추시지 않으셨다. 얼굴에는 부모 말 안 듣는 데 대한 서운함이 늘 묻어있었다. 더구나 천사평 위에 논농사 짓는 퇴직 교장 선생님은 밭작물은 1주일만 물에 잠기면 뿌리가 삭아 없어진다는 고전농법 지론을 주장하면서, “거기서 밭곡식이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소”라고 악담을 해댔다. 그러나 사무처장으로 퇴직한 나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마다 회계결산으로 평가를 받아온 나에게 한두 해도 아니고 계속 적자가 누적된다면 심리적 압박을 견디기 어려우리라. 이때 정말 기적처럼 구원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나간 지 3주째 되는 교회 설교에서였다.

목사님은 몇 해 전 겨울에 신앙수련회 강사로 거창고등학교를 다녀왔는데 체육관에 걸렸던 ‘취업 10훈’을 소개로 주일 설교를 시작하셨다. 그 중 취업과 관련 없는 누구나 쾌감이 가는 항목만 발췌하면,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 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 하는 곳이면 틀림없으니 의심치 말고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설교 제목은 ‘세상을 지배하는 의식과 질서를 거부하라!’였다. 나는 제2의 취업을, 학생들은 생애 첫 취업을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동일자처럼 오버랩 되었다.

다행히 아내와 동생들이 적극 호응해 주었기에 응원군에 힘입어 정말 단두대로 향하는 심정으로 외삼촌(엄니는 아버님 돌아가신 후 늘 외삼촌을 견본으로 말씀하셨다)께 말씀드렸더니 외변과 중앙으로 수로를 내고 굴삭기로 땅을 깊숙이 파 뒤집어 물이 잘 투과될 수 있도록 하면 가능하다고 하셨다. 처음으로 조건부 아군을 만나니 정말 기뻤다. 엄니께 말씀드렸더니 또 펄펄 뛰신다.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런 저런 사유로 밭이 완성된 때는 유월 중순이 지나서였다. 이제 시기상 선택할 작물의 수도 폭이 좁아졌다. 다행히 들깨와 대두콩은 가능했는데 이로써 모세의 지팡이처럼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냐면 엄니께서 해마다 들깨를 사셔서 자식들에게 기름을 짜 주셨고, 콩으로 메주를 쑤어 장을 담가 주셨기에 이 두 과제가 충족되면 엄니의 분노나 서운함이 상쇄될 것 같은 느낌이 벼락처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종 모두 농약을 치지 않고도 병충해가 거의 없다.

논농사나 논을 밭으로 바꾼 농사나 물은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작년엔 수로는 충분한 규모였는데 배수구를 너무 작게 만들어 장마 때 밭이 수영장이 돼버렸다. 급히 논둑을 헐어 위기를 극복했고, 올해는 배수구를 최대 크기로 확장했는데 트랙터가 밭을 갈면서 실수로 매립된 플라스틱 배수관을 반으로 찌그러뜨려 장마 때 호수처럼 출렁이는 밭을 큰매부와 몇 시간을 치열한 사투 끝에 복구했다.

이제 호된 시련 끝에 얻은 결론인지라 콘크리트 관으로 교체만 하면 물 문제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다. “황하의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이 내 현실 속에서 구현된 좋은 경험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뭄이 심했는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엘니뇨현상 때문에 기후가 변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엔 너무 가물어 콩 수확을 포기하고 갈아엎은 곳이 많았다. 천사평은 위아래가 논이라 전혀 영향이 없어 황금알 벼 같은 대두를 생산했다. 메주 쑤어 장 담그고, 가마솥에 직접 두부 만들어 할머님과 아버님 제사상에도 올렸다. 들깨와 콩 잉여농산물은 엄니가 직접 세일하신 덕에 내년 집안 하계휴가비로 알뜰하게 저축해 놓았다.

반면에 올해는 일조량이 많아 벼가 풍작인데 수입쌀 때문에 값은 폭락해 농민들의 마음은 우울하고, 국회 자료에 의하면 쌀 재고 보관비만 5천억이 든다니 국가경제도 힘들 것이다. 나는 나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재주 있는 형제들 중 둘째 매부의 지도하에 도리깨질을 배워가며 들깨와 콩을 모두 기계를 빌리지 않고 타작을 했더니 비용도 절감되었고, 형제들에 이어 친구들까지 도와주어 두름실(동내면 학곡리 옛 지명) 벌판이 오랜만에 사람들 함성으로 들썩였다. 콩 타작하는 날엔 큰 매부가 죽은 소도 먹으면 벌떡 일어난다는 산 낙지를 한 상자 가져와 막걸리와 함께 막내 매부가 만든 평상에서 들판잔치를 벌였다. 의심의 눈초리로 관찰하시던 교장 출신 농부께서도 막걸리 한 잔 같이 하시더니 어느새 얼굴이 불콰해지시자 “천사평(千四坪)을 인간 천사(天使)들이 평정(平定)했구먼. 이름이 좋아! 정명순행(正名順行 좋은 이름은 만사가 잘 된다)이라 하지 않던가, 또 명전기성(名詮其性 이름에 모든 것이 있다)이란 말도 있지” 하신다.

전직 교장 선생님이시라 정말 아시는 게 많으신 분이다. 그리고 자신도 밭으로 바꾸고 싶지만 너무 늙었고 자식들도 관심이 없어 할 수 없다고 아쉬워하신다. 추수감사주일엔 목사님께 햇 들기름 한 병을 드렸다.

단두대를 천사의 나팔로 바꾼 음성을 천사평에서 사철 내내 들을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이상건 (62·석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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