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민간인 통제 풀려 피서지로 각광
6~8개 절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춘천숲체원’ 조성 앞두고 발굴 기대감 높아

언뜻 보기엔 깊어서 보이지 않는 골짜기 입구에 맑고 투명한 계곡수가 풍부하다. 수량으로 보면 골짜기가 상당히 깊을 것으로 보이지만 입구가 협소하고 철조망으로 막혀 있어 그 깊이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여름 피서지로 많이 알려진 삼회동(삼한골)은 1980년경부터 북파공작원 훈련장이 만들어져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탓에 그 안쪽은 국방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송이를 채취하는 마을주민 10여명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삼한골은 17세기경부터 발간된 지도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원래의 지명은 삼회동(三檜洞)이다. 춘천지역 역사서 중 가장 권위 있는 엄황의 《춘주지(春州誌)》(1648년)에는 경운산의 서쪽에 삼회사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수많은 고지도에 모두가 삼회동으로 기록돼 있다. 삼회동이 언제부터 삼한골로 불리게 됐을까? 1686년 춘천부사를 지낸 송광연의 여행기에 처음으로 삼한동이란 지명이 등장하고, 19세기 말 김평묵의 《중암집(重菴集)》에 다시 삼한동이란 지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삼한골로 불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

삼회동(삼한골)에 대한 서설이 길었던 이유는 삼회동에 있었던 사지(寺址)들에 관한 기록 때문이다. 춘주문화 제30호(2015년)에 수록된 <三檜洞 지명과 寺址에 대한 검토>에는 문헌상으로 삼한사, 은선암, 구암, 법화사, 대곡사 등 6개의 사지(절터)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고, 주민들 구술을 따르면 2개의 사지가 더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많은 사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회동에 대한 역사기록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불교를 전공한 학자들조차 삼회동의 사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송광연이 기록한 대로 천년고찰 삼한사가 있어서 삼한골로 불렸다면 삼회동은 춘천지역 문화재의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삼회동에 대한 기초조사도 실시되지 않았다.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군사지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회동은 2015년 국방부로부터 원래의 소유주인 산림청에 반환되었다.

춘천시는 삼회동에 2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산림복지진흥원이 건설하는 체험레포츠를 기반으로 하는 ‘춘천숲체원’을 유치했다. 올해 기초조사와 설계를 마치고 바로 조성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비로소 삼회동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기회가 왔다. 문헌상으로 소략하게 나타나는 삼회동의 수많은 사지가 조사를 통해 알려지면 삼회동은 춘천의 역사적 보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삼회동 조사에 기대를 거는 건 한 번도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미답지에 대한 신비감 때문이다.

오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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