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순간 

                                                      황순애

시계가 이상하다. 아까도 10시 10분이었는데 지금도 10시 10분이다.
10시 10분에서 심장이 바르르 떨리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를 쓰지만 1초 앞으로 나아가려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아가려다 다시 제자리로.
제자리걸음에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잠시 후 숨이 끊겨 있다.

- 황순애 시집 《황홀한 당신》 중에서
 

왜 10시 10분이었을까?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우리는 시인의 인식이 멈추어선 각성의 정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시인 앞에는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하나 딱 버티고 서 있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려고 무진 애를 쓰다 결국 뒷걸음질 치고 마는, 손닿을 듯 닿지 않는 1초 앞에 대한 간절함으로 절벽처럼 서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스스로 감당해야 할 그런 자기 결정의 순간이 있다.

그런 때를 목도하는 일상에 대한 각성의 순간 시인은 담담한 말을 예리하게 벼려 우리의 허방을 ‘스벅’ 베고 가는 것이다.

시계라는 물건의 사물성을 빌어 우리의 외연을 호쾌하게 해명하고 있다.

숨이 끊겼다는 말로 다른 시간 궤도에 편입해야 할 필연의 때를 명확히 종결짓고 마는 것이다.

번역시 하나가 떠오르는 것이다.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정신을 차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라.
- 에리히 케스트너 <덫에 걸린 쥐에게>

그동안 올린 제 부족한 감상평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유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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