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춘천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비밀이 많다. 맥국의 역사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춘천 최초의 사찰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다. 많은 이들은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을 청평사로 알고 있다. 973년 백암선원이 세워진 후 1068년 보현원, 1089년 문수원으로 중건돼 고려 말에 청평사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 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있으니 가히 춘천 최고의 사찰이라 할 만하다.

용화산 사찰지의 불대좌 기단석

그동안 청평사로 개칭된 시기에 대해서는 1555년 보우대사가 청평사를 중창할 때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강원대 사학과 홍성익 박사는 고려 말 운곡 원척석의 글을 근거로 개칭시기를 1368년 이전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처음 도입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 신라는 이보다 한참 늦은 572년에 불교가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춘천에는 이보다 한참이나 늦어서야 불교가 나타났을까? 이런 의문을 다소나마 풀어줄 수 있는 사찰지가 용화산 깊은 골짜기의 법화사지로 알려진 절터다. 이 사찰지는 산속 깊숙이 숨겨져 있고 초목에 가려져 있어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용화산 자연휴양림에 거의 다 가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춘천에서는 볼 수 없는 고매기 초석이 줄을 지어 남아 있으며 연화좌대, 사자문양 석재, 탑의 갑석 등 많은 석재가 잘 남아 있다. 이 사찰의 초석은 원주의 거돈사지에서 볼 수 있는 초석과 같은 형태다. 불대좌도 그대로 보존돼 있었으나 1990년대 후반쯤 도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찰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사찰명과 건립연대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춘천풍토기〉에 용화산의 법화사란 사찰명이 나온 이후 이 사찰지는 법화사지로 불렸다. 그러나 1686년 춘천부사를 지낸 송광연은 《삼한동기(三韓洞記)》에서 법화사의 옛터는 삼한동(삼한골) 계곡 입구에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용화산의 사찰지를 법화사로 보기엔 많은 의문이 남는다. 우선 사찰의 석재들이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에 이르는 양식이고, 그 규모나 조형미로 봤을 때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 법화사로 보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 사찰지와 관련해 의미 있는 기록이 강릉 굴산사문의 낭공대사 비문에 나오는 “삭주의 건자야”다. ‘건자야’는 청평사보다 약 100여년 이른 시기에 건립된 사찰로 만일 용화산의 사찰지가 건자야라면 춘천에서 가장 오돼된 사찰은 청평사가 아니라 용화산의 건자야가 돼야 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춘천에서, 특히 중도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적을 통해 이미 2천500년 전부터 대규모로 사람이 살았던 춘천이라면 불교가 전래된 초기나 적어도 서기 600년 이후에는 사찰지가 있어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용화산의 사찰지를 통해 춘천의 불교역사가 새롭게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아쉬운 건 이 사찰지가 도굴까지 당했지만 아직도 아무런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년 전 강원도가 예산을 세워 보호조치를 하려고 했지만 국유림관리소의 동의를 받지 못해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문화재를 보는 국가기관의 태도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오동철 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