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時着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오는 대낮
신작로 위에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 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는 몇 장 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시골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을 하던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삶의 한 단계로 여겨질 정도였다. 주로 누나들이었다. 누구 누나는 봉제공장으로 갔고, 누구 누나는 버스 차장이 되었고, 누구 누나는 식모가 되었다. 우리는 누나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이 화창한 봄날 서울집 툇마루에 앉아 분가루를 날리며 화투를 뒤집고 있는 여자는 또 누구의 누나란 말인가?

70년대, 전방 소읍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생생하다. 시인은 서울집 여자를 통해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한 시대의 가난을 처절하다 못해 기이하게 보여준다. 평론가 김현은 기형도의 시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명명했다.

어쨌거나 “그래 그런 봄날이 있었지” 하고 넘어가기엔 뭔가가 자꾸 목에 걸리는 시다.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라는 마지막 문장이 ‘나는 몇 개의 언덕을 넘은 흙먼지일까?’를 자문케 한다. 그래도 봄날은 또 가겠지만.

정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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