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각 당의 대선후보들이 결정됐다. 국민들이 한겨울에도 광장에서 고생하며 촛불 민심을 통해 쥐어준 소중한 기회임에도 대선후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막말과 왜곡·비방전으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물론 후보자 검증을 위한 정책대결 과정 중에 일정 부분의 설전과 공방은 피하기 어렵지만, 인신공격성 막말과 앞뒤가 맞지 않은 언행은 모든 후보들을 하향 평준화시켜 우리의 눈에 찍을 후보가 없게끔 보이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 찍을 사람이 없다고 판단되면, 누가 가장 유리하게 될까?

막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지역 출신의 후보는 경선에서 떨어졌으나 그 당의 대선후보 또한 ‘프로막말러’라는 명성답게 막말의 대가다. 최근 언론에서 자신에 대한 악플을 읽고 반박해 달라는 PD의 요청에 어차피 날 찍지도 않을 사람들인데 기분 나쁘게 봐서 뭐하느냐며 끝까지 읽기를 거부했다. 자신을 뽑지도 않을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겠다니, 지금은 청와대를 떠나 독방에 계신 어떤 분과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홍준표 후보가 안타까웠던 또 다른 점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홍 후보는 우리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꼰대’란 일반적으로 목소리가 크고, 고집이 세며, 항상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며, 경청을 통한 소통의 노력 없이 자신의 경험과 권위만 앞세우는 사람을 말한다. 과거 수직적인 구조의 한국사회에서야 이런 것이 통했지만, 모든 것이 급변하고 어제의 경험과 지식이 내일이면 폐기처분되는 시대에는 더 이상 꼰대로 살아가기 어렵다. 웹 2.0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참여, 공유, 개방의 플랫폼 기반으로 정보를 함께 제작하고 공유하는 것이었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조직은 오너의 말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자유로운 비판과 소통을 통해 내부의 문제를 함께 찾고 해결하는 조직이다. 이러한 사회시스템의 변화 속에서 꼰대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표현이 돼 버렸다.

물론 꼰대를 원하는 사람은 없고 꼰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결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우리 기성세대도 변해야 한다.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으로 중무장했음에도 비정규직 일자리도 찾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우리는 더 고생했는데, 눈높이를 낮춰야지”라고 말해봤자 통할 리가 없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하게 자랐지만, 친구의 부재와 놀이의 부재 속에서 정신적으로 궁핍하게 자라는 청소년에게 “요즘 아이들은 도대체 감사할 줄을 몰라!”라고 비난하는 것 또한 반발심만 불러일으킨다.

나도 늘 청소년을 만나서 함께 생활하기에 나름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무수히 노력한다. 섣불리 조언부터 하지 않고, 왜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지에 대해 먼저 들으려고 노력한다. 또 내가 더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을지언정 내 생각이나 판단이 항상 틀릴 수 있음을 밑바닥에 깔고 대화에 임한다. 내가 꼰대가 되는 순간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나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러나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소통의 기술에서 가장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황희 정승과 소를 가는 농부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시대적 여건이나 나이, 지휘와 상관없이 항상 대화를 하는 상대방에 대해 인간적 예의를 갖추고 배려와 존중의 마음으로 소통을 한다면 우리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갈등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결국 진정한 소통이란 상대방에 대한 인간적 존중을 밑바탕에 깔아야 가능한 것 아닐까?

이원영 (춘천시청소년수련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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