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들과 똑같이 되려고 자기 자신의 4분의 3을 잃어버린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오래 전 초봄의 일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 딸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화를 내며 말했다.

“엄마 ○○ 때문에 창피해. 엄마가 ○○이가 학교에서 오면 혼내줘.”
“무슨 일인데 그러니?”
“오늘 비도 안 오는데 ○○이가 학교에서부터 우산을 쓰고 걸어와 아이들이 수군대고 그랬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얘기해줘.”


같은 학교를 다니는 딸은 아이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불편하고 힘들었다며 아들 녀석에게 주의를 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직장일이 바쁘고 모든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는 나는 오자마자 이유를 묻지도 않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막 비폭력대화를 배우기 시작한 때라 평소 맘대로 넘겨짚어 판단하는 습관을 내려놓고 아들만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숨을 고르고 아들을 기다렸다. 아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아, 누나한테 얘기 들었어. 오늘 비도 안 오는데, 우산을 쓰고 집까지 왔다며? 무슨 이유가 있었니?”
“네. 며칠 전에 비가 온 날 우산을 쓰고 갔다가 학교에 두고 왔는데, 오늘 우산 생각이 나서 가져오려고 했어요. 손에 들고 밖에 나왔는데 햇빛이 너무 강해서 들고 오는 것보다 햇빛 가리개로 쓰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쓰고 왔어요. 저도 뒤에서 아이들이 저에 대해 얘기하는 소리 들었지만 저는 그냥 쓰고 왔어요.”

부모로서 아들에 대해 잘못 판단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아마 ‘그래, 햇빛 가리개로 쓰려고 했구나’라고 미리 생각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나지 않는 엄마였다.

사실 아들에게 물어보기 전에도 그런 멋진 생각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게 아니었다. 다만 비폭력대화에서 배운 것처럼 ‘내 생각대로 판단하지 않는 훈련을 한 번 해보자’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 순간 아들이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내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내 잣대로 이런 멋진 아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고 혼냈던 많은 일들이 떠올라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아팠지만, 아들과 내게 새로운 관계를 열어준 소중한 사건이었다. 그 후로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아들만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물어보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아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며칠 전, 아들에게 안 좋은 일이 있어 함께 대화를 나누다 눈물을 참으며 얘기하게 되는 상황이 있었다. 그 순간, 아들도 힘들었을 텐데 내게 갑자기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주었다.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모르는 노래였지만 왠지 위로가 되고 따뜻함이 느껴졌다.

“엄마 위로해주고 싶었어?”
“네.”


아들은 그동안 내가 힘들 때 조용한 음악을 듣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반전. 그 음악을 함께 듣다가 “아름답다. 아들아, 이 음악 제목이 뭐니?” 아들의 대답, “제목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 그래. 얘기하고 싶지 않구나.” 순간 웃음이 났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아서 다 알고 싶은 나와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많은 아들. ‘서로의 것을 인정해야지….’

음악 제목을 몰라서 지금도 답답하긴 하지만, 지금 그대로도 좋다.

이승옥 (비폭력대화 전문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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