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올해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自畵像)>의 ‘우물’ 속에는 스스로 미워지는 사나이가 있다. 하지만 생각하면 가엾고 그리운 존재다.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는 ‘우물’이라는 매개체, 혹은 반사체를 통해서 자신의 본디 모습을 다시 한 번 성찰해보는 것이다.

우물 속에 있는 자연은 그대로인데 다만 ‘파아란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낯선 시각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파아란 바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의 대표작 <서시(序詩)>에 나오는 잎새에 일었던 그 바람일까?

아마도 그의 깊은 내면에서 부는 바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라며 난해한 시를 읊조리던 선배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은 아무 소리도 없는 그의 ‘거울’ 속에서,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는 외딴 ‘우물’속에서 각각 자아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또 다른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는 우리에게도 때로는 ‘우물과 거울’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시는 삶의 투영체다..

허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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