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런 겨울을 넘기고 봄바람에 실려 오는 풍경에 마음이 동(動)하여 길을 나섰다.

가슴이 설레고 표정이 밝아지는 봄.

가벼워진 옷차림에 맨살을 드러내고 걸음걸이가 생생한 사람들.

물오른 꽃망울로 병아리 열병식의 개나리 군락.

아쉽게 꽃잎을 떨구고 초록으로 변한 목련이 싱그럽다.

꽃이 봄의 전사라면 봄나물은 계절이 주는 선물이다.

봄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지천으로 고개를 내민 봄나물이 걸음을 세우고 시장의 좌판에 오른 입맛 돋우는 나물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추위를 견디며 땅의 기운을 듬뿍 받아 자라난 봄나물.

‘나물’은 순수한 우리말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산과 들에서 채취해서 먹을 수 있는 나물이 850여종이나 있었다 한다. 그중 농촌에서 많이 이용하는 나물은 200여종이고, 대부분이 봄나물이라 했으니 듣도 보도 못한 산나물이 정말 많다는 말이다.

음식이 넉넉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이런 나물들이 귀중한 식량이었다. 산과 들에서 뜯어 온 나물만으로도 푸짐한 밥상이 차려지고, 무엇보다도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구할 수 없었던 겨울철엔 비타민을 보충해 주는 음식이어서 나물이 천연 비타민이였다.

화학비료와 농약, 땅의 오염으로부터 안전하고 하우스에서 자란 채소와 달리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낸 여러 물질들은 사람에게 유익한 항암, 항균 효능을 품고 있다. 거기다가 쌉쌀한 맛과 싱그러운 향기를 가득 담고 있는 봄나물은 춘곤증을 예방해주는 특효약이기도 하다.

봄나물 중에 숙채든 생채든 나물반찬으로 쓰지 않는 유일한 것은 쑥이다. 향이 강하고 질기지만 그럼에도 쑥을 귀히 여기는 건 히로시마 원폭 후에도 살아남은 강한 생명력과 쓰임새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쑥엔 무기질과 비타민 A와 C가 많다. 그래서 쑥은 몸의 저항력을 길러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피로회복에 좋다. 특히 찬 속을 덥게 해주고 빈혈에도 좋아서 여성들에게 좋다. ‘쑥 반 쌀 반이다. 약 삼아 먹어라’며 봄철마다 잊지 않고 해주시던 친정어미의 쑥 인절미가 그립다.

봄나물 중 가장 으뜸은 바로 두릅. 두릅은 두릅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하는데, 그 독특한 향이 일품이다. 자연산 두릅은 4~5월에 잠깐 동안 먹을 수 있는데,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인공 재배를 하므로 이른 봄부터 나온다. 단백질이 많으며, 섬유질과 칼슘, 철분, 비타민B1, 비타민B2, 비타민C 등이 풍부하다. 특히 쌉쌀한 맛을 내는 사포닌 성분이 혈액순환을 돕고, 혈당을 낮춘다고 한다. 또한 간에 쌓인 독소를 풀어내는 효능이 있고 피와 정신을 맑게 한다.

냉이, 달래, 원추리, 참나물 등 숱한 봄나물이 있지만 ‘두릅’은 사포닌 성분 때문에 최고로 꼽히는 듯하다. 나물들은 생명력이 강해 도로변이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요즘 같은 환경에선 오염물질이나 중금속에 노출되기 쉬우므로 시장이나 마트에서 구입해 먹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산과 들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캐고 뿌리째 뽑아 씨를 말리는 일이 없기를 당부한다. 대부분의 봄나물은 단오까지만 캐는 것이 적절한데 단오가 지나면 씨앗을 품어 질기고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들이서 욕심을 부려 산 갖가지 봄나물들. 이때가 아니면 못 먹을 나물들을 풀어놓고 호사를 부려본다. 집 된장을 풀고 생콩가루를 묻힌 쑥을 넣은 향긋한 쑥국에 우리밀을 풀어 지진 두릅전과 달래간장을 내어 출출한 배를 채울 작정이다.

 

채성희 (음식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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