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픈 4월이 흐른다. 산자락에 유정의 동백꽃이 가득 피었다가 스러지고 운동장가 벚꽃이 덧없이 바람에 날릴 때 읊조려지는 시구가 있다.

꽃을 꺾어내면
들 한쪽이 가만히 빈다
아무도 모르게 저를 키워 와선 이렇게 꺾인다
어쨌든 이렇게 꺾어지고 나면
애초에 없던 약속마저 애처롭다.
- 김완수, <들꽃>


그렇게 빈자리에 또 아름다운 것들이 ‘가만히’ 자리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 안타까운 마음들이 모여 주말 저녁 어른들만을 위한 특별한 도서관 하룻밤 행사 ‘머무르다, 마주하다, 느리게 읽다’를 열었다. 저녁 8시, 무려 40여명의 교사와 부모들이 모여들었다,

1부는 세월호 3주기를 추모하며 ‘기억,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주제로 그림책 함께 읽기와 8명의 교사들이 리코더 중주 선율과 노래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들려주고, 참가자들이 미리 선택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시, 소설, 산문 등 글의 한 대목, 혹은 추모수업을 하며 아이들이 쓴 엽서글을 낭독하고 경청하며 함께 흐느끼고 함께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학부모 책모임의 우쿨렐레 연주에 맞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를 함께 부르고 아픔을 서로 다독여 기억하며 마음을 모았다.

2부는 ‘영화 함께 읽기’ 시간이었다. 케냐의 84세 ‘마루게’ 할아버지의 실화를 담은 저스틴 채드윅 감독의 <퍼스트 그레이더(The First Grader)>는 한밤 중 도서관 하룻밤의 또 다른 체험이었다. “교육은 과거로부터 배우며,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도 있다”는 마루게 할아버지의 말씀은 큰 울림을 주며, 그의 존재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로 다가오게 했다. 케냐의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고통스럽고 아픈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평생 동안 그의 손목에 차고 있는 수감팔찌는 어쩌면 그가 마침내 글을 읽고 쓰게 되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평생을 바쳐 추구해 온 고귀한 가치의 증거이기도 했다.

3부는 몰입독서의 시간이었다. 각자 도서관의 마음에 드는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삶의 현장에서 교사, 부모라는 역할이 앞서 미루어왔던 읽고 싶었던 책과 자신만의 오롯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새벽이 밝아올 때, 우리는 각자 읽은 책을 서로 소개하고, 은은한 라일락 향기가 도서관 뜨락을 가득 채운 봄밤의 체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공간에서의 특별한 도서관체험이 만남, 연대, 깊은 사색과 성찰로 이어지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이야기했다.

교육현장에서 함께 읽기와 실천을 위한 교사들의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춘천, 화천, 철원, 양구, 인제, 홍천지역 교사들의 독서교육 워크숍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말, 100여명의 교사들이 모여 그림책 함께 읽기와 책놀이, 독서토론 워크숍을 진행했고, 지속적인 활동으로 4월, 5월, 6월에도 월 1회 워크숍을 통해 배움과 실천을 함께 모색해가기로 했다. 또한 올해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춘천권역 독서아카데미 강좌토론도 개별 학교를 넘어 만남과 소통, 연대의 장에서 깊은 성찰의 시간으로 다져가고 있다.

춘천권역의 40여 개에 달하는 학부모 책모임도 연대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에 이어 학부모연합 상호협력토론 워크숍과 저자만남, 독서문화체험, 북릴레이 읽기 활동으로 학교별 함께 읽기가 지역 연합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희망을 느낄 때는 오로지 교사나 부모의 삶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뿐이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지금의 조건에서 교사가, 부모가 반 발짝이라도 앞서서 살아가며 보여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경험한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고 헤쳐 나갈 것이다. 어른들의 책읽기는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은 물론, 여럿이 함께 책 대화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그려가는 모습 그 자체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인 것이다. 책읽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진정한 공감의 힘을 키우고,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주제들을 탐구하고 소통하는 힘을 키워가는 그 길에 우리 어른들의 함께 읽기가 희망을 열어가고 있다.

한명숙 (춘천여중 수석교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