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헌이 청평산을 방문하고 남긴 〈청평록〉에 이런 말이 있다. “청평산 골짜기에 있는 천석(泉石)의 아름다움은 대관령 서쪽에서 비슷한 곳이 없다.” 영서지방에서 제일 뛰어나다는 그곳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골짜기에서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아마 대부분 구송폭포로 알려진 와룡담폭포를 들 것이다. 와룡담폭포는 장쾌한 아름다움이 있다. 곧바로 떨어지는 물과 못에 떨어지면서 내는 물소리는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고도 남는다. 청평사 앞에 있는 서천과 서천폭포는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정약용은 청평사를 찾아 여러 편의 시를 짓는다. 그 중 폭포에 관한 시가 네 편인데, ‘서천폭포’가 하나를 차지한다. 예전에도 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여러 번 정약용의 시를 읽었는데도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청평계곡에서 폭포는 와룡담폭포만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아무리 읽어도 서천에 폭포가 있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공주탕’이란 안내판이 세워지면서 온통 ‘공주탕’에만 정신이 팔리게 된 것도 서천폭포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원인이 될 것이다.

정약용은 서천폭포를 어떻게 그렸을까?

서천폭포는 땅을 진동시키고 殷地西川瀑
태을단에선 별에 비를 비는구나 祈星太乙壇
세차게 쏟아지니 천하의 뛰어난 형세요 建瓴天下勢
높은 걸상은 한낮에도 춥구려 危榻日中寒
용꼬리처럼 구불구불 돌아가니 龍尾螺螄轉
술그릇엔 탐하는 짐승 서려 있는 듯 犧尊饕餐蟠
삼백 가닥으로 나뉘어 흐르지만 分流三百道
결국은 하나의 폭포가 된다네 究竟一飛湍


태을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서천에는 지금도 기우제를 지내던 터가 남아있다. 서종화는 〈청평산기〉에서 “대 서쪽에는 이층 단이 있는데, 고을의 수령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다. 정성스럽게 기원하면 종종 감응이 있다고 한다”고 증언해준다. 기우제를 지내는 양상은 다양하다. 무당들에 의한 기우굿이 있는가 하면, 사찰에서 승려들이 주관하는 기우제가 있고, 조정이나 지방관청에서 왕 또는 기관장이 참여하는 유교식 기우제 등이 있다. 자료에 의하면 고을의 수령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교식 제의 절차는 기우 축문을 읽으면 되지만, 서천에서는 기우 주술행위를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천폭포를 잘 묘사한 것은 경련이다. 서천폭포는 물이 떨어지기 위해서 구불구불 깊게 패인 고랑을 거쳐야 한다. 마치 꿈틀거리는 용을 연상시킨다. 두 가닥 폭포 중 하나는 떨어지면서 바위를 깊게 파서 절구 확을 만들었다. 일명 공주탕이라고 하는 곳이다. 공주탕으로 떨어진 물은 한참 빙글빙글 돌다가 아래로 흘러간다.
규모가 작은 것을 보고 이것도 폭포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서천의 묘미는 보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가 아닌 것에 있다. 아기자기한 변화가 있으며, 부드럽고 그윽한 멋이 서천의 아름다움이다. 서천폭포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농축시켜 보여준다.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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