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노예로 살고 싶은가, 주인으로 살고 싶은가?”

유명한 철학자가 TV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연히 주인으로 살고 싶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 주인은 정말 피곤한 것 아니냐. 좋은 주인을 만난 노예만큼 편한 팔자가 있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학생이 직접 교사가 돼 낚시강의를 하는 모습. 춘천전인학교에서는 철학수업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학생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태도를 기르고 있다

지금 이러한 현상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강대국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도자로 ‘스트롱맨’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를 종식시키고 자신들을 힘 있게 이끌어줄 주인을 섬기는 ‘노예’가 되길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민주주의 국가를 흉내 내지만 과거의 왕권국가로 회귀하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의 자유에 떳떳하게 책임을 진다는 것,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혼란스러운 문제에 직면해 비전을 찾고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누군가의 종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요즘에는 스타강사가 대세다. ‘스타강사’란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을 곱게 빻아서 소화하기 쉽게 만드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수업현장에서 생각하는 힘은 길러질 수 없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정해진 답만 쉽게 이해시켜준다. 주인이란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사람이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정해진 답을 빨리 수용하고 따르는 사람은 노예다.

교육현장에서는 역사를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 사람들, 예컨대 철학자, 과학자, 괴짜들과 같은 시대의 반항아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소크라테스, 예수, 부처, 노자, 니체,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엘런 머스크….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이들의 삶에 대해 배우고, 이들이 한 질문을 공유해 아이들에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하여 아이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내면의 영성을 오롯이 일깨워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인류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또한 인공지능의 발달로 기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의 영역을 넘어 인간보다 더욱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단계까지 넘보고 있다. 노예도, 어정쩡한 구멍가게 주인의 역할도 앞으로는 모두 기계가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우리 아이들이 나아길 길은 내면의 영성과 그것이 인도해주는, 길 없는 길을 개척해나가는 모험가 정신일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함은 망망대해에 나침반을 던져주는 것과 같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 이 말은 신을 섬기던 노예도 죽었다는 말과 같다.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은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준 불꽃과도 같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자유의지와 주인의식, 오로지 그것뿐이다. 그것을 지닌 자가 바로 민주주의의 참 주인이다.

 

홍지훈 (춘천전인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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