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된 대통령, 정부를 보는 듯하다. 사실 우리 국민은 촛불정국 하에서 좌우 이념, 정당 선호, 정책적 이해관계, 국가위기, 원만한 대외관계 등 거창한 것들은 언감생심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뭔가 상식이 통하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정부, 대통령, 관료를 보고 싶다는 정도의 소박한 꿈조차 기대난망이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증폭되는 듯하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가 새 정부가 일을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41.1%만이 지지를 보낸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고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불과 열흘 정도의 변화된 모습만으로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충분했던 것이다. 국민 마음에 지난 겨울 차가운 삭풍과 싸워가며 촛불을 들고 거리를 헤맨 기억과 함께 납득 안 되는 국정농단의 주범들을 권좌에서 축출해 감옥에 보낸 일들이 정권창출의 자부심으로 남아있어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후보에 대한 보수층의 우려는 ‘빨갱이 정부’ ‘포퓰리즘 정권’ 같은 시대착오적인 것도 있었지만 ‘친문 패권주의’나 ‘인수위 없는 준비되지 못한 정권’ 같은 뼈아픈 것들도 있었다. 그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정치경력을 시작했기 때문에 국정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을 것이며, 따라서 어려움 속에도 비교적 원만히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는 기대도 교차했다.

출범 후 문대통령은 박근혜와 다른 탈권위주의적 모습으로 국민들을 감동시키면서 탕평인사와 개혁지향적 국정운영 등 희망적 모습을 보였다. 5·18기념식,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태도, 소박한 국민과의 소통노력 등을 보면서 그가 정말로 국민의 아픔을 쓰다듬고 눈높이를 같이 할 준비가 되어있음에 안도한다. 납득 가능한 인사로 읍참마속의 아픔도 감수했다.

외교안보적으로는 보수를 안심시킬 수 있을 만큼 단호하면서도 주변국에 대한 발 빠른 외교를 가동했고, 비정규직 해소라는 노동과제를 추진하면서도 “한꺼번에 다 얻으려고 하지 말라”고 쓴 소리도 가능함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과제로 여겨지는 검찰개혁의 단호한 칼날을 빼들어 국민감정을 읽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한마디로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고 대통령이 된 느낌이다.

이명박근혜 정부 9년여 동안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의 후퇴였다. 이는 국정원, 검찰, 매스컴 등에 대한 교묘한 통제기제를 통해 나타났는가 하면, 때로는 블랙리스트처럼 노골적인 탄압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세월이 오래 이어지면서 대학을 비롯한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은 권력에 굴종하고 어쭙잖은 시장주의 논리에 기댄 배금주의와 권위주의적 통제에 익숙해져 왔었다. 이제 정상을 되찾을 때가 됐다.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과제는 산더미다. 어느 하나 쉬운 건 없다. 허나 여당의석은 부족하다. 선진화법의 제약까지 감안하면 그동안 한국정치가 보여준 무능과 소통부족, 그리고 타협미숙 등으로는 촛불민심의 개혁의지를 실현할 수 없다. 이를 돌파할 힘의 원천은 어차피 국민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국민의 높은 지지가 뒷받침되면 야당 역시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출발은 좋다. 잠재력도 보인다. 진정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 그것이 답이다.

김기석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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