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할 일도, 기념할 일도 많은 푸른 하늘 5월.

사람으로 살자니 필요해 만든 목적일이 빼곡한 달력의 날짜 밑에 깨알만한 크기의 글자가 있다. 입하, 소만…. 여름의 절기력이다.

절기란 하늘의 태양이 15˚씩 움직일 때마다 땅에 나타나는 15일 단위의 기후변화를 말한다. 식물이 싹을 틔우고 성장해 여무는 모든 과정은 태양의 기운에 영향을 받는다. 1년 내내 태양이 같은 각도와 높이로 뜨고 지지를 않다 보니 그것을 세분화한 것이 24절기다. 계절마다 6개의 절기가 있으며 각 계절의 절기에 따라 하늘의 빛깔과 높이가 달라지고, 땅 위의 풍경이 변한다.

그래서 자연을 일구며 사는 농부들에게 절기력은 중요하다. 농부들은 절기에 맞춰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수확을 한다. 옛 사람들은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는 사람과 자연은 한 몸이며, 변하는 자연에 맞춰 사람도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4절기(節氣)의 조화로운 사용으로 농사를 중심으로 한 규칙적인 삶의 양식을 만들었고, 다양한 세시풍속과 24절기 이외 여러 명절이 추가돼 인정과 멋이 넘치는 공동체의 삶을 이루어 왔다.

다가오는 21일은 24절기 중 8번째이며 여름절기인 입하에 이어 두 번째인 소만(小滿)이다. 이 시기에는 가끔 가뭄이 들기도 해 물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여서 작은 물줄기라도(小) 가두어 가득 채운다(滿)는 의미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滿)는 뜻이 담겨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간장독의 뚜껑을 열고 하루 종일 햇빛을 쪼이던 때도 이때쯤이다. 농사의 시작과 더불어 모내기를 시작하는 때인지라 ‘부엌의 부지깽이가 일을 돕고 발등에 오줌 싼다’는 옛말처럼 일손이 딸리고 바쁘다. 하지만 양식이 바닥나고 보리는 여물지 않아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목숨을 힘겹게 연명하던 고단한 시기이기도 했다.

야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아카시아의 향긋한 향에 배고픔을 달래며 산나물은 끝나가고 밭에서 재배하는 푸성귀는 아직 어려 먹기 이른 이 때,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나물이 씀바귀다. 그 특유의 쓴맛이 강해 씀바귀라고 부르는데 잎으로 나물을 해 먹었다.

새봄의 향취를 자랑하던 냉이는 꽃이 피어 못 먹게 되니 취나물에 그 자리를 넘겨주며 여름의 문턱을 넘어가는 절기인 소만. 온 산천이 푸른빛을 띠는 소만에 오직 대나무만이 새로 돋아나는 죽순에 영양분을 공급하느라 누렇게 변한다. 이때 나오는 죽순을 따다가 삶아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거나, 들기름을 두르고 함께 짓는 죽순밥은 그 맛이 구수해 이 시기의 별미로 여기기도 한다.

소만 무렵에 피는 봉선화 꽃으로 잎을 따 백반과 소금을 섞어 찧은 다음 손톱에 얹고 호박잎이나 헝겊으로 감아 붉은 물을 들이고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선화 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풍습은 단지 예스런 낭만일까!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투덜대기보다는 우리 입에 들어갈 곡식과 열매의 속을 꽉 채워주는 햇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5월을 마무리하는 건 어떨지. 때에 맞게, 철에 맞게, 자연스럽게 먹고 사는 것이 슬로푸드다!

 

채성희 (음식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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