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춘천은 변화의 기미가 뚜렷하다. 우리 집 옆의 묵묵했던 산은 반 토막으로 잘려 도로가 났고, 멀게만 느껴졌던 어느 동네까지는 엑세레이터 한 번 만에 아직은 하얀 산의 속살을 가로질러 금세 다다를 수 있다. 초고층 아파트의 등장은 춘천의 밝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 그 자체인 듯하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의 표상은 정갈한 아파트단지와 뻥 뚫린 도로망, 좋은 차를 타고 함께 쇼핑이나 여행을 가는 단란한 가족이 되었다. 역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면서 비싼 자동차를 타고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까? 이런 환상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두 발로 걷고, 도구와 불을 사용하며 엄청나게 커다란 집단을 이루고 산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이 집단적 질서를 이루고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상상력 덕분이다. 수렵과 채집생활 이후 농업혁명을 이루면서 정착이 가능했던 사피엔스들은 커다란 협력이 필요했다. 협력망을 만드는 데 일등공신은 잉여식량이었다. 고대 제국은 농업사회와 생산물의 불공정한 분배를 토대로 생겨나게 되었고,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데는 상상속의 질서와 공통의 신화가 필요했다.

우리나라에 단군신화가 있듯이 어느 나라든 역사의 첫머리에는 신화가 존재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토대에는 요순임금의 신화가 있고, 비교적 역사가 짧은 미국에도 종교적 자유를 찾아 새로운 대륙에 정착한다는 국가이념의 신화가 존재한다. 다른 생명체들이 그러하듯이 단순히 DNA를 복사하고 이를 후손에 전달해주는 기능만으로는 사회운영에 필요한 핵심정보를 보존할 수 없다. 사피엔스의 사회질서는 철저하게 가상적인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가상들은 개개인의 인식 속에 있지만, 놀랍게도 같은 형태가 구성원 모두에게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언어, 법, 돈, 종교, 국가가 모두 그런 예들이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인류적 공통의 신화가 있다. 바로 돈이다. 돈 때문에 매일 아침 잠과 사투를 벌이며 출근하고, 돈 때문에 학교에 간다.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은 대학에 가기 위함이고, 대학에 가고자 하는 것은 직업 때문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돈벌이와 직결되는 것이다. (혹시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인 학생들이 있다면 사과한다.) 공정한 생산과 분배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건설했던 공산국가의 운명은 100년을 넘어서지 못했다. 비교적 오랜 신화인 국가의 역사도 5천년 정도이고, 현재적 의미의 종교와 철학인 기독교와 불교, 유교가 시작된 ‘축의 시대’의 역사는 2천500년이니 호모사피엔스의 20만년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모든 신화가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신화라는 상상의 감옥에서 한 걸음 벗어나면 또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늘 표상에 매달려 산다. 아이를 키울 때는 월령에 따른 키와 몸무게, 수유량 등이 맞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서점에서는 동화책 등을 보면서 몇 살이 보는 것인지를 묻는 손님이 많다. 아홉 살에는 아홉 살만의 책이 있고, 열두 살에는 열두 살만의 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를 책에 끼워 맞추는 것 역시 나이에 맞춰 능력이나 감정이 정해져 있다는 표상 때문이다. 정작 책에 표시된 나이에는 뚜렷한 근거가 없어 보인다. 좋은 엄마나 아빠, 결혼에 대한 표상도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이렇듯 행복도 돈도 모두 상상의 산물이다. 희노애락에 오욕의 다양한 감정들이 두서없이 반복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기쁘건 슬프건 하나만의 감정이 지속되는 것은 병이다. 행복은 머무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돈과 성공, 행복의 표상을 지워보자. 여유로운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갇힌 감옥은 바로 내 안에 있다.

 

윤미정 (인문서당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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