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장애아동을 키우는 엄마들의 자조모임이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갈 때, 학교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 부모들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대부분 많은 부담감과 우울감이 동반되는 탓에 설렘이나 성장에 대한 기대보다는 위축된 가슴을 펴는 것이 큰 숙제가 된다. 이 날 모인 사람들은 사회적경제를 통해 장애아동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한 셈이다. 대단한 해결법을 아는 것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선이 그어져야 한다는 점에 다들 눈빛이 달라졌다. 주변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는 것에도, 그래서 내 이야기도 나눌 기회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대목에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1주 전 대구 안심마을에 다녀왔다. 이야기로 접하고 이상적인 마을일 것 같다는 궁금증에 발길을 재촉했다. 안심마을은 인구 4만의 규모에 신규 아파트들이 단지를 이룬 신도심과 기존 구도심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커뮤니티가 주로 구성돼 있는 안심1동만 해도 약 2만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이 중 마을 커뮤니티 활동에 참가하거나 이용하는 주민 수는 약 3~4천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많은 곳에서 견학을 오고, 부러워하고 한다지만 여전히 마을 안에선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다고 한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중 에피소드 하나를 들었다. 어느 날 저녁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실수로 동네 횟집 수족관을 깨는 일이 있었다. 횟감을 모두 먹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이 아빠는 무거운 맘으로 동네 아빠들을 불러내야 했지만 덕분에 그날 저녁 마을사람들이 함께 둘러앉아 마을잔치를 하고, 십시일반 물고기 값도 보태주었단다. 마냥 이상적이진 않지만, 서로가 관심과 공감으로 일상을 보내는 것이 꽤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을의 건물주택협동조합으로 지은 ‘공터’가 만들어지기까지도 꽤 오랜 소통의 시간들이 있었다. 마을주민 20~30명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친해지다 보니 이런저런 실험도 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 새로운 사람들이 결합하기도 하면서 땅과 건물에 대한 목표가 자연스레 생겼다. 필요와 공감이 분명해지면서 일이 진행되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열매가 맺어진 사례였다.

여전히 마을의 필요들을 나누다 보면 어떤 것은 모습을 드러내고 어떤 경우엔 표류하기도 하는 등 상황과 사안에 따른 차이들이 존재한다. 대안학교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논의를 진행하다 발달장애인 대안학교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공감이 커졌다고 한다.

마을카페와 로컬생협이 함께 하는 ‘땅과 사람이야기’에선 생협물품의 90%가 공동구매방식으로 바로 소비되고, 지난 주말엔 52번째 열리는 마을음악회가 이곳에서 있었다. 다양한 마을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하기에 느린 배송도 가능한 매장. 안심마을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커뮤니티의 기능인 것이다. 먹고 사는 일상이 공유되는 공동체 사업들이 주변에 존재하고, 마을의 소비자가 함께 생산자가 되는 것 말이다.

기존에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실행해가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실행에서 가치를 생산해내는 순환적 기능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여름의 문턱에서 춘천에서도 시끌시끌한 바람들이 들썩이고 있다.

5월부터 시작된 ‘뚝방마켓’엔 우리 지역 재주꾼들이 모여 핸드메이드 장터를 연다. 얼마나 전문적인가의 잣대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의 이야기를 가졌는지 먼저 만나보면 어떨까? 또 돌아오는 6월 10일엔 ‘봄내가 자란다’ 사회적경제 장터가 열린다. 자신들이 꿈꾸는 공동의 가치를 모두와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고, 그 일을 생업으로 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자리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웃들의 이야기가 보이고, 조금만 마음을 열면 함께 나누고 만들어 갈 사람들이 보인다. 모양새는 달라도 우리에겐 마음 깊숙이 공통적으로 닿아있는 꿈이 있다.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자, 더 자주 이야기하자. 우리가 부러워하는 공동체의 비결은 돌고 돌아 결국 ‘만남’이었고, 비법은 ‘소통’이었다.
 

김윤정 (협동조합 교육과나눔 이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