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후회하는 일이야 많겠지만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 받을 때를 떠올리면 한 가지 후회되는 일이 있다. 소아과 파견근무를 갔을 때의 일이다. 하필 내가 파견된 때가 겨울철이어서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 때문에 입원한 아이들이 많았고 내가 주치의를 맡고 있던 아이들도 기관지염 환자가 10여명 있었다. 파견근무를 하다보면 그 과에서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전공의들끼리는 보통 ‘루틴(routine)’이라고 하면서 인계했던 일이다. 폐렴유사 증상으로 입원한 아이들은 퇴원할 때까지 매일 아침마다 흉부사진을 찍어야 하는 게 소아과의 ‘루틴’이었다. 나는 그때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오더’를 했고 내가 맡던 아이들은 내 오더에 따라 아침마다 줄을 서서 흉부방사선 사진을 찍고 왔다. 교수가 회진을 돌 때면 아이의 상태를 보는 것보다 컴퓨터에 띄어 놓은 흉부사진을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다. 열이 떨어진 아이도, 기침이 줄어들고 증상이 좋아진 아이들도 모두 예외는 없었다. 정말 그 아이들에게 방사선 촬영은 필요했을까. 당장의 폐렴을 고치겠다는 선한 의도로 아이들의 장기적인 건강을 오히려 위험에 빠트린 건 아니었을까. 나는 그때 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림1] 방사선의 인체 내부 피폭량과 외부 피폭량 

2주전 ‘춘천지역 방사선 안전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이 《춘천사람들》에 실렸다. 그 글은 강원대병원에서 핵의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천인국 씨가 기고한 글로, 내가 속해있는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이하 ‘방생단’) 이 그동안 해온 활동과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는데 각각의 항목을 면밀히 검토해보자.

[그림2] 연간 자연방사선량 2.8mSv 

첫째, ‘우리나라는 일상생활 중에 연 평균 3mSv의 방사능에 노출되고 이를 시간단위로 환산하면 340 nSv/hr 정도다. 본인이 춘천 집에서 휴대용 측정기로 측정을 해봐도 400nSv/hr 정도의 값이 나오는데, 이 정도의 수치를 가지고 이상할 정도로 높다고 할 근거는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 주장은 소위 ‘팩트 체크’에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일까? 먼저 [그림1]과 [그림2]를 보자.

이 그림은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에서 발표한 것이다. 그림1은 세계적인 자연방사능 피폭량이고 그림2는 한국의 피폭량이다. 그의 말과 유사하게 한국의 피폭량은 2.8mSv 정도 된다. 거기까지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집에서 휴대용 측정기로 측정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전체 자연방사능 피폭량일까? 아니다. 그림2에서 ‘대지에서’라고 쓰여 있는 피폭량(1.01mSv)이 우리가 측정기로 실내에서 측정하는 양이다. 결국 한국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휴대용 측정기로 측정했을 때 노출되는 자연방사능 피폭량의 평균은 3mSv가 아니라 1mSv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간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114nSv/hr가 된다. 즉 천인국 씨가 그의 집에서 측정한 수치는 한국인 평균 노출량의 4배에 가까운 수치다.

둘째, ‘연간 노출되는 선량한도를 1mSv로 권고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자연방사능의 양을 1mSv 이하로 줄이라는 게 아니라 피할 수 있는 자연방사능과 인공방사능의 양을 1mSv 이하로 줄이라는 얘기’라고 그는 말한다.

이 주장은 마치 방생단이 1mSv가 안전기준치인데 춘천은 이에 비해 높게 나오는 곳이 많아서 문제라는 식으로 얘기한 것처럼 비친다. 물론 나는 ‘예전에 살던 집의 방사능 수치가 400nSv/hr 이상 나왔고 이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가 권하는 인체 허용치(연간 1mSv 이하)의 3배가 넘는 수치’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1mSv라는 인체 허용치를 인용한 것은 그것이 안전기준치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내가 살던 집에서 측정한 400nSv/hr 라는 수치의 의미를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1mSv라는 허용치를 인용한 것뿐이다.

방사능은 안전기준치가 없다. 만약 방사능에 대해서 안전한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노출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일 것이다. 방사능은 그것이 아무리 소량이라 하더라도 노출되는 양에 비례해서 위험성은 커진다. 얼마(예를 들면 1mSv) 이하면 안전하고 얼마 이상이면 안전하지 않고 하는, 그런 기준치는 없다. 이걸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어려운 말로 기술했다.

“방사선방호 목적에서 선량-반응 데이터와 연계된 기초 세포공정에서 확실한 증거의 무게는 약 100mSv 미만의 낮은 선량 범위에서 암이나 유전영향 발생이 해당 장기나 조직의 등가선량 증가와 정비례로 증가한다고 가정함이 과학적으로 그럴듯하다는 관점을 지지한다. (중략)방사선방호의 현실적 체계는 약 100mSv 미만 선량에서 선량이 증가하면 방사선에 의한 암이나 유전영향의 발생확률도 정비례로 증가한다는 가정에 계속 기초할 것이다.”(2007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권고)

그동안 춘천의 높은 방사능 문제에 대해서 내가 했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한 글이 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낮은 선량의 방사능에 장기간 노출되었다면 손상이 회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위험성은 상당히 낮아진다. 하지만 암과 같은 장기간의 부작용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는 수년 혹은 수십 년 후에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효과가 항상 발생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가능성은 노출된 양에 비례해서 커진다. 아이들과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서 훨씬 민감하므로 그 위험성이 더 높다.” 이 글의 작성자는 세계보건기구(WHO)이다. 천인국 씨는 이런 세계보건기구 혹은 내 주장에 대해서 낮은 선량의 ‘방사능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할지에 관하여 정확히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양창모 (가정의학과 전문의·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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