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해 전 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으레 그랬던 것처럼 낮부터 마신 술에 간(肝)이 평상심을 향해 달려가던 저녁, 끝내기 맥주 집에서 뜬금없이 Y가 말했다.

“형, 나 둘째 나면 육아휴직 하려고 해. 1년 동안.”

“야! 니네 마누라 직장 없잖아. 근데 무슨 휴직을 내?” 살짝 눈이 풀려 발음이 꼬여가는 P가 “애를 니가 낳냐”며 빈정댔고, 나는 Y의 배를 살살 만져가며 낄낄댔다.

“그럼. 그럼. 잘 생각했다. 애 둘 키우는 게 보통일은 아니지. 아휴. 밤에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밥 달라고 보채지. 목욕시켜야지. 진짜 피곤해. 그거!”

“큭! 자긴 잠만 자 놓구선.” 잠자코 듣고 있던 ‘마눌’이 뾰족 눈을 치켜떴다.

“야. 그땐 내가 사업하느라고 맨날 새벽에 들어오던 때잖아. 그때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니까 지금 애들이 이렇게 큰 거지. 안 그래? 그래도 가끔씩 도와줬잖아. Y야 니 맘 이해한다. 마누라 사랑하는 건 아는데, 설마 진짜 육아휴직 내는 건 아니지? 굶어 죽을 일 있냐? 다 우리처럼 애들 키우는 거야, 임마.”

“형, 형은 애들 키운 거 아냐. 형수가 키운 거지. 어디 가서 애 키웠다고 하지 마! 도와줘? 애를 키우는데 도와준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틀린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피해서였고, 심한 모욕감이 밀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ㅆㅂ~ 애는 니만 키우냐? 졸라 유별나게 구네.” 터진 입에서 겨우 내뱉은 말 때문에 더 찌질해 보였고, 동석한 사람들에게 내 편이 되어달라고 구걸하던 처량한 눈동자 때문에 더 초라해져 버렸다. 술자리는 얼어버렸고, 함께 있던 사람들의 눈빛은 복잡해졌다.

“환경문제가 지구의 ‘책임’이 아니듯, 여성문제 역시 여성의 ‘책임’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주장은 언제나 ‘차이가 차별이 된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만들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차이와 차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 《낯선 시선》(정희진 지음, 교양인 펴냄)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의 피로감과 공포, 좌절과 혼란을 1982년생, 김지영 씨의 인생기를 통해 통렬하게 보여준 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민음사 펴냄)을 꺼내 든 건, Y가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그때였다.

지영 씨의 일생을 관통하는 마초사회의 불편한 진실, 위태로운 차별의 일상성은 끝내 산후우울증과 겹쳐, 정신착란으로 확장된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맘충 팔자가 상팔자야…한국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출산 후 당연하게도 직장을 그만둔(절대로 자발적일 리 없는) 지영 씨는 따뜻한 봄날, 아이와 함께 산책하던 공원에서 1천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다가 그렇게 벌레가 되었다.

나와 아내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다. 그 사이 아이들은 커 버렸고, 내가 모르는 사이 간간히 아내는 벌레가 되고, 때론 김치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생존하는 한 지구행성은 언제나 49%와 51%의 남녀 염색체 비율을 유지했다. 통계적으로 1982년생 중 김지영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가장 많았다고 하는데, ‘보편과 공감’은 이 소설의 커다란 힘이다.

이 책의 마지막 단락, 정신과의사인 ‘나’는 지영 씨의 치료과정에서 자신의 가정사를 이입하며, 공감하고 자신의 아내에게 미안해한다. 그는 뿌듯하게 상담사 이수연 선생의 임신을 축하하며 다짐한다. 훌륭한 여직원, 얼굴도 예쁘고, 단정하며, 센스 있는 이 선생이지만, 출산에 따른 공백기간 동안 고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보겠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알량한 성 감수성은 타자에 대한 동정인가? 소설 속 화자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가긴 한 것인가? 내겐 공감의 윤리와 언어가 있긴 한 것인가? 이 땅의 모든 김지영 씨는 회복될 수 있을까? Y는 그 답을 알고 있을까?

이 책을 여전히 차이와 차별의 긴 터널에서 방황하는 숱한 나에게 진심으로 권한다. 지구 절반의 문제이며, 내 아내와 딸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류재량 (춘천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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