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만나면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다. 대답은 ‘몰라요’, ‘좋아요’, ‘나빠요’ 중 하나다. 좋다는 대답에 “어떻게 좋은데?”라고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한다. 나쁘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별로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이 늘어간다.

상담실에 오는 엄마들이 호소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이가 그렇게 하는 걸 보니 그런 걸 원하는 거 같아서 해 줘도 시큰둥해서 기분이 나쁘다고 한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줘야 만족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들에게 말한다.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뭘 해주면 좋을지. 엄마가 해주고 싶은 거 해주지 말고.”

자녀가 많지 않고 육아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생활한다. 그리고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거기에 눈치 빠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절한 엄마들은 아이가 해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것을 해준다. 그리고는 시큰둥한 아이들의 반응에 실망하고 심지어는 배신감을 느낀다고 하는 엄마도 있다.

상담실에 오는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나빠요”라고 호소한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 단계를 거쳐 나오는 대답은 “내 마음을 몰라주고 엄마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다. “네 마음은 어떤 마음인데?”라고 물어보면 마음을 표현한 적이 별로 없는 아이는 자기 마음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능력이 부족해 오해를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른 결혼을 하고 30대에 아이를 둘 키웠다. 이상하게 큰 아이가 말이 늦었다. 신체발달과 행동발달은 정상인데 언어발달만 늦는 것이 이상해서 고민을 하니 누군가는 언어치료를 받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날부터 아이를 관찰했다. 관찰 사흘 만에 알았다. 아이가 말이 필요치 않다는 걸. 전업주부였던 나에게 육아는 사랑이기도 했지만 책임이고 일이기도 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의 온 레이더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아이의 욕구는 단순했다. 그러니 아이가 원하는 것을 즉시 제공할 수 있었고, 아이는 말이 필요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필요한 것을 말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던 삶이 달라졌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내느라 사용하던 에너지의 사용이 줄었으니 훨씬 여유 있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오늘 기분은 어떠셔?”라는 질문에 “구름이 몽글몽글한 기분이에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를 안고 황홀해하기도 했고, “이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에 “망쳐보고 싶어요”라고 해서 망쳐보기도 했던…. 언제 생각해도 행복한 추억이었다.

아이들 마음을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부모뿐 아니라 아이들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얻은 아이들의 만족도는 당연히 떨어진다. 그러니 시큰둥한 반응을 하게 된다. 필요한 것을 말하기도 전에 해주는 친절한 부모들은 그런 반응을 섭섭해 한다.

부모도 아이도 질문을 귀찮아한다. 대답하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아이에게 질문이란 귀찮은 것일 뿐이다.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됐는지를 물으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그냥’이다. ‘그냥’ 그렇게 됐고, ‘그냥’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삶을 지루하게 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질문을 귀찮아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 중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반갑기 그지없다. 어떤 질문에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한다. 때론 너무 엉뚱해서 놀랍기도 하다. 놀라는 나의 반응에 “이상해요?”라고 물으면 말한다. “아니, 아니. 재미있어서. 이렇게 놀라운 생각을 하는 네가 멋져서.” 그러면 아이들이 좋아라한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자.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것 같은지. 그러면 행복한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영미 (아주작은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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