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이에 관해 물리학자들이 오랫동안 논쟁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는 빛이 입자라고 했고, 엠페도클레스는 파동이라고 했다. 근대에 와서 뉴턴은 입자라고 했고, 그의 동료인 호이겐스는 파동이라고 했다. 이후 토머스 영이 빛이 파동임을 입증했고, 다시 아인슈타인이 입자임을 밝혔다. 빛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현대 물리학계는 빛이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이 생각은 물리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물질이 이 둘 중에 하나의 성질을 갖는다고 믿어온 고전역학자들에게 어떤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갖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고양이가 동시에 죽어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빛의 성질에 관한 이러한 생각이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다. 양자역학은 에너지의 최소단위인 양자(量子)의 운동을 다루는 미시세계의 학문이다. 이곳에서는 입자와 파동이 하나의 물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측정도 불가능하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전자의 운동과 위치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운동을 정확하게 측정할 때는 위치 값이,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려 할 때는 운동 값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을 때 특정 물체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물체가 흐려지는 것처럼 관찰자의 시선이 측정값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설명을 아인슈타인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양자역학을 거부하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 말이 표상하고 있는 세상은 완벽한 신이 창조한 완전한 세계다. 이 완전한 세계에서 어떻게 물질이 불확정적일 수 있는가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관찰자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세상은 독립적으로 완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과학계가 이해하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이었고, 우리가 감각하는 세상도 이러하다.

이 완전한 세계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과학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감각하고 인식하는 현상 이면에 특정한 원리가 있다고 보고 그 실체를 파악하려 하는 것이다. 철학자들도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삶과 경험의 본질이라 여겨지는 물(物) 자체를 상정하고 이를 추론하기 위해 현상계를 해석하고자 한다.

철학자들마다 현상계와 물자체를 관계 짓는 방식은 다르지만 니체는 이러한 모든 견해가 “현재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유기체의 발전과정 전체에 걸쳐 점차적으로 형성되고 서로 유착되어 과거 전체의 축적된 보물로서 지금 우리에게 상속된 한 덩어리의 오류와 상상력의 결과”(《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6절)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따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오류와 상상력의 총체임을 인정하면 다른 세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양자역학이 열어준 세계는 그동안의 우리 인식체계를 벗어난다. 이 세계는 확정적이지 않고, 확률적으로 존재하며, 객관적이기보다는 관찰자의 시선에 영향을 받는다. 이곳에는 고전역학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자역학이 고전역학을 대체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감각하 는 세계는 여전히 뉴턴의 고전역학의 원리가 적용된다. 세상은 다른 원리를 갖고 있는 두 개의 세계가 겹쳐 있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등장은 단지 다른 세계도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Otra mundo es posible)’는 사파티스타들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제국적 자본주의에 결연히 반대하며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는 멕시코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세계도 존재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고전역학이 적용되는 세계가 유일한 세계가 아니듯 자본주의의 원리가 적용되는 세계도 유일한 세계는 아니다. 보지 못하고 보려하지 않을 뿐 그들의 세계는 존재하고 있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가 공존하듯 자본주의와 다른 세계는 공존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도 다른 세계를 부정하기 위해 신을 불러내야 했다. 혹자는 그가 신을 끌어들이는 순간 이미 미시세계와 양자역학을 받아들인 것이라고도 한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홍정희 (인문서당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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