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텃밭 근처 숲에 길냥이가 새끼를 낳았다. 한참 지난 후 4학년 아이가 학교 뒤란으로 어미에게 버림받았다는 검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아이들은 누구부터 시작했는지 종이상자와 담요로 고양이 잠자리를 마련하고, 물그릇이며 사료, 통조림을 마련했다. 중간놀이시간, 점심시간은 물론 방과후와 심지어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고양이를 돌보러 오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눈에 눈곱이 잔뜩 끼고 푸석푸석한 털이며 잘 걷지를 못하는 이 생명을 걱정했다. 그러나 고양이를 돌보겠다고 당번까지 만드는 아이, 고양이를 귀찮게 하는 아이 등 이 아이들을 지켜보는 학교 어른들은 걱정이 앞섰다. 고양이가 뒤란에 들어온 지 1주일 후 이 문제가 교직원회 안건으로 올라왔다.

고양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저러다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정말 어미에게 버림받은 고양이가 맞는지, 아이들이 고양이를 불쌍하다고 데리고는 왔지만 길냥이 어미 입장에서는 난 데 없이 새끼를 납치당한 건 아닌지, 병이 든 고양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앞으로도 길가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이야기가 오고 갔다.

“고양이가 혼자 길냥이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치료를 하고 사료를 제공하자.”
“아이들이 길가에서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교육을 하자.”
“아이들과 고양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 반 다모임에서 이야기하게 하자.”


도덕수업 ‘생명의 존중’ 단원을 이용해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매우 신중하게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어떤 반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내어 고양이를 키워 줄 집을 찾아보자”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리고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주제로 대자보 작업을 했다.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를 만나면 며칠 동안 지켜보면서 주변에 위험한 물건을 치워주고, 정말 어미에게 버림받았다면 먹이를 정기적으로 주자. 어미가 잠시 외출했을 수 있으니, 절대로 손으로 만지지 말자. 그러면 정말 어미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 그리고 고양이를 데려다 함께 생활할 경우 생명에 대해 책임질 수 있을 때에만 그렇게 하자. 아이들의 진지한 논의는 예쁘다는 것과 동정심·책임감을 잘 분별하자는 배움으로 이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생각한다.

아이들은 언제 가장 잘 배울까? 이번 고양이 살리기처럼 ‘자신의 문제로 다가올 때, 삶에서 찾아진 배움 일 때, 그리고 그 배움이 실천으로 이어져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라는 말이 입증된 셈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안건이 교사회에 올라오기까지는 아이들이 보인 조건 없는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이제 우리 교사들은 판단의 근거를 교육의 본질과 그 결정이 아이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들이 그러했으면 한다.
학교 생태교육 예산으로 병원에 다녀온 ‘요미’는 건강을 회복했다. 학교 뒤란에서 햇볕을 즐기며, 그 넓은 공간을 향유하고 있다, 아이들도 중간놀이 시간이 되면 ‘요미’를 만나러 간다. ‘요미’가 잘 자라서 당당한 길냥이로 독립할 수 있을까? 학교 밖의 세상을 향해 ‘고양이를 부탁해’라고 말해도 될까?

 

박정아 (호반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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