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의대 생리학교실의 사제지간(師弟之間), 신형철 & 박해용

장면 1) 긴박한 군사작전의 와중, 선두를 지휘하던 군인의 눈에 제거해야 할 대상이 포착된다. 주변은 여전히 경계가 삼엄하다. 후미의 동료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무전으로 전달하다가는 나와 동료들 모두 들키기 십상이고, 수화로 전달하기에는 너무 멀다. 이때 선두가 머릿속에 내장된 칩으로 뇌파를 전송하여 다른 병사들에게 위험물의 위치와 상황을 알리고 대처하도록 한다.

장면 2) 전투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부상자는 나온다. 척수가 손상된 군인 A는 삶을 자포자기 하고 있다. 평생 오로지 군인의 사명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 움직이지 못하는 군인이라니…. 다행히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신경보철장치를 통해 손상된 척수와 뇌의 정보가 연결되어 흐르고, 그는 다시 이전처럼 일상의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일들이 현실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림대학교 생리학교실의 신형철 교수와 박사과정의 박해용 씨는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네이쳐(Nature)지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 5월호에 <뇌파로 동물의 행동을 실시간 조절하는 뇌-뇌 접속기술의 개발>이라는 논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을 만나 뇌 과학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본다.

이번 논문의 제목을 보면, 사람의 뇌와 동물의 뇌가 연결되어 인간이 동물의 뇌를 조절한다는 것 같은데요.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신형철 교수와 박해용씨가 인간의 뇌파로 쥐의 행동을 조절하는 실험을 설명하고 있다.

박해용 : 간단히 말하면, 사람의 뇌파신호를 이용해서 아무런 학습 없이 쥐의 운동을 조절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어요. 기존에도 뇌-뇌 접속(brain to brain interface) 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이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뇌파정보 전달에 대한 것이고, 일정 시간 학습 준비과정이 있어야 가능한 기술이었습니다. 이번 연구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사전 학습 없이 동물의 행동의지가 실시간으로 인간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히 훈련을 위해 소모되는 시간이나 중독과 같은 부작용도 없습니다.

“학습 없이”라는 부분이 이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군요. 서로 생각을 읽고 소통하는 것에는 ‘텔레파시’ 같이 고도의 집중된 훈련과 몰입 환경이 필요한 것도 있고 복잡한 기계장치의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것도 있는데, 이번 것은 뇌파 측정장치를 쓰는 것으로 바로 적용이 된다는 것이지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듯한 소재라 신기합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신형철 : 음, 고등학교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 내가 왜 이렇게 살까? 왜 인간은 실수를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잖아요. 생각이 인간의 행동을 만들어내는데, 그 행동에 실수나 불합리가 있었던 거예요. 그럼 행동을 이끌어내는 생각이나 사고, 이 부분을 탐구해야겠다 싶었지요. 처음에는 심리학, 철학, 종교 등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마침 제가 무척 좋아하던 생물 선생님이 기억이나 사고를 담당하는 뇌세포와 뇌의 기능에 대해서 영감을 주셨어요. 대학에서 공부를 해보라고 하셨지요.

박해용 : 저는 공각기동대나 메트릭스 같은 SF 소재의 영화를 보면서 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영화에서 보던 텔레파시처럼, 상대의 생각과 의식을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죠. 사실 더 현실적으로는 영어학습에 대한 고민이 동기가 되긴 했어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 내가 한국어로 해도 상대가 자신의 말로 이해할 수 있는 의식교류 장치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힘들게 각 나라의 말을 배우지 않아도 되고(웃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교수님의 ‘말하는 강아지’에 대한 기사를 접했어요. ‘아, 강아지가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인간과 인간끼리도 가능하겠구나’ 하고요.

인간행동의 원천인 ‘생각’에 대한 철학적, 심리학적 고민을 하다가 그 생각을 만들어내는 기관인 ‘뇌’를 연구하게 된 청년과 SF 영화를 보며 언어가 아니라 뇌와 뇌의 교류를 꿈꾸었던 신세대 청년은 이렇게 40년 뒤 한 연구실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제자는 진지하고 신중했고, 스승은 그런 제자의 한마디 한마디를 흐뭇하게 거들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뇌와 뇌가 접속되고 조절하는 기술은 인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신형철 : 뇌와 기계, 뇌와 뇌를 연결하는 기술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전쟁을 많이 치르다보니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들에 대한 재활에 많이 활용되고 있어요. 파킨슨씨 병과 같이 뇌질환 환자의 뇌에 전기자극을 통해 운동장애를 회복시키는 심부뇌자극기를 비롯해서 뇌의 시력과 청력을 담당하는 부위를 연결하는 인공와우나 인공망막처럼 감각기관의 상실을 대체해주거나, 로봇 팔과 다리를 뇌의 신경신호로 연결해 이동을 하거나 요리와 운전도 가능하구요.

이런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brain to machine interface: BMI)은 상당히 진전되어 있습니다. 동물의 뇌와 접속하는 기술개발도 활발합니다. 몇 년 전에 제가 뇌에 이식된 칩에 컴퓨터로 신호를 전달해 개가 반응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했었는데요(이 연구에 참여한 개의 이름이 ‘아라’다). ‘불을 꺼’, ‘불을 켜’ 등의 명령어를 인식하도록 훈련받게 되면, 개가 전등조작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또 개가 가지고 있는 후각을 활용하되, 훈련을 통하지 않고 뇌파신호로 냄새를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이 가능합니다. 질병의 진단이나 희귀 약초와 마약 탐지 등에서 활용될 수 있어요. BMI기술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작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뇌와 뇌(brain to brain interface:BBI)를 연결하는 것은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상상하는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지요. 다양한 동물종에게 적용해 극한 환경에서 인간이나 기계가 수행하기 어려운 자원을 탐색할 수도 있고, 영화 아바타처럼 한 개체의 뇌 정보를 다른 개체에 전달하는 기술도 개발될 수 있어요. 무엇보다 뇌 환자들에게 제일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하는 유익한 상상을 현실화 해내는 것이 과학자의 일이 아닌가 싶다. 상상과 사고, 어쩌면 그것이 모든 생산의 원동력이 아닐까. 상상은 곧 생각이고, 생각은 곧 뇌에서 비롯되니 신 교수가 뇌를 연구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가까이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흥미가 돋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좋은 기술이 악용되거나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정작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된다.

박해용 : 지식에서 철학과 인간애가 빠지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되뇌고 있어요.(실제로 실험용 쥐를 통한 시연을 하는 동안, 박해용 씨는 모든 과정에서 조심스러웠다. 쥐가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최소화 시켜주려는 마음이 전해졌다.)

신형철 : 생명을 다루는 연구분야는 모두 생명윤리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저희도 이 연구를 위해서 수년 전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연구윤리와 법, 사회적 제도의 기초를 마련했어요. 칼도 요리사에게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이고, 수술 장면에서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만, 강도에게는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 되죠. 이런 연구도 누군가 악용한다면, 타인을 조정하거나, 통제하는데도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과 제도 속에서 좋은 원천기술들이 인류에게 부정적으로 활용되지 않을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다뤄져야 하구요.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낸 곳이라고 하기에는 허름해 보이는 이 작은 연구실에서, 스승과 제자는 뇌 과학으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박해용 씨는 당분간 유선으로 연결된 기술들을 무선화 시키고, 정보도 일방에서 쌍방으로 교환하며, 칩을 심는 방식에서 비침투방식(non invasive)으로 전환해 실용화를 높이는 데 연구를 집중할 계획이다.

신형철 교수는 이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뇌의학 지식을 인간사회에 적용해 이해하고 대중화시키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신 교수는 무엇보다 제자가 이뤄낼 앞으로의 성과와 성취를 보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한다. 그 스승에 그 제자, 이들이 꾸는 꿈은, 우리가 꾸는 꿈을 현실화 시켜주는 것이리라. 우리는 이들을 믿고 마음껏 좋은 세상, 더 나아진 세상을 꿈꾸어도 될 듯하다.

 

 

 

허소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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