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정에서 바라본 팔경(八景)을 ‘소양팔경’이라고 한다. 소양8경은 1967년 소양정을 지금의 위치에 중건하고 선정한 것으로, 봉의산을 감돌아 나가는 구름인 ‘봉의귀운(鳳儀歸雲)’, 호암(虎岩) 소나무에 부는 바람인 ‘호암송풍(虎岩松風)’, 화악산의 맑은 기운인 ‘화악청람(華岳淸嵐)’, 월곡리의 아침 안개인 ‘월곡조무(月谷朝霧)’, 고산의 저녁노을인 ‘고산낙조(孤山落照)’, 우두 들녘에 밥 짓는 저녁연기인 ‘우야모연(牛野暮煙)’, 매강 어부들의 피리소리인 ‘매강어적(梅江漁笛)’, 노주를 돌아드는 돛단배인 ‘노주귀범(鷺洲歸帆)’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고산낙조(孤山落照)’다. 고산은 일명 부래산(浮來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자 그대로 보면 떠내려 온 산인데, 금강산으로부터 떠내려 왔다고 한다. 떠내려 온 곳이 금강산이라고 하였으니, 그곳의 경치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금강산을 관리하는 금성(金城) 고을의 관리가 여러 해 동안 세금을 거두어 가니 고을 백성들에게 괴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한 당사자는 일곱 살 먹은 꼬맹이였으니, “다른 고을까지 와서 세금을 거두어가는 힘이라면 산을 도로 옮겨갈 수도 있을 터인데”라고 금성 관리에게 말하였고, 이에 금성 관리는 아무 소리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고산은 일명 고산대(孤山臺)라고도 한다. ‘고(孤)’는 ‘상대하여 짝할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고 대(臺)는 ‘조망하기 좋은 장소’를 뜻한다.

고산대는 상중도(上中島) 북쪽 끝인 북한강과 소양강의 첫 합류지점에 있다. 돌로 이루어진 돌출 봉우리로 10여명이 둘러앉을 수 있으며, 사방 30여리를 충분히 보고도 남음이 있다. 가깝게는 북한강(장양강·자양강), 소양강, 우두산, 봉의산, 봉황대, 백로주 등을 볼 수 있고, 멀리는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삼악산, 계관산, 가덕산, 북배산, 몽덕산, 응봉, 용화산, 마적산, 오봉산, 구봉산, 대룡산, 금병산 등을 볼 수 있는 춘천 제일의 조망처(眺望處)다. 그 가운데 서쪽 산으로 넘어가는 저녁노을을 감상하기에 좋은 자리로는 고산대가 최고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고산대에 올라서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孤山煙浪泛扁舟(고산연랑범편주)
고산 안개 낀 물결에 조각배 띄우니
峭壁層崖蕩客愁(초벽층애탕객수)
깎아지른 높이만큼 시름이 몰려오네.
漁笛帶風聲嫋嫋(어적대풍성뇨뇨)
고깃배의 피리소리 바람에 실려 오고
江波涵日影悠悠(강파함일영유유)
강물에 담긴 해 그림자는 길어지누나.
錦鱗因餌牽絲出(금린인이견사출)
물고기 미끼 물고 낚시에 딸려 나오며
彩鴨隨派得意浮(채압수파득의부)
물결 따라 색동오리 마음껏 떠다닌다.
從此盡抛名利事(종차진포명리사)
이곳에서 세상 명리(名利) 던져버리자.
一竿明月占派頭(일간명월점파두)
밝은 달빛 한 줄기 강물에 퍼지는구나.


매월당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짓밟힌 어린 단종을 위해 평생 의리를 다하며 마음을 변치 않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이러한 까닭에 매월당은 ‘방달불기(放達不羈)’하다는 평을 들었다. 마음과 발길이 닿는 대로 가며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절대로 타협함이 없었다는 뜻이니, 이러한 높은 정신적 경지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혼자 올라보면,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시야가 열린다.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는 자연의 조망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고 이를 행동화에까지 이르게 된다. 나아가 자연을 통해서 내면을 점검하고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 받게 되기에 이른다. 이는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겼을 때 참된 자신을 지켜나가게 되지만, 욕심에 눈이 멀었을 때는 먹이를 문 채로 낚싯줄에 딸려 올라오는 물고기 신세가 되고 만다. 즉,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세상에 대한 일체의 명리(名利)를 던져버렸을 때 한줄기 밝은 달빛처럼 은은하게 삶을 자유롭게 이끌 수 있다. 저녁노을이 지는 시각에 세상의 명예와 이득을 벗어던지고 고산대에 한 번 올라보면 어떻겠는가?

허준구 (춘천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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