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의 취임을 계기로 여성가족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7일 양성평등 주간에 맞춘 행사현장에서도 ‘양성평등’보다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여성운동계는 그동안 ‘양성평등’이라는 용어에 대해 성별 이분법적 구도조성과 제3의 성에 대한 소외 등의 이유로 우려를 표해왔었다. 또한 지난 2015년 한국여성단체운동연합은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여성정책은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양성평등정책은 성별격차에 치중한 나머지 ‘양적인 동일함’만을 기계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한 정책처럼 보였다. 이러한 회의적 반응 속에 정 장관은 ‘의도적’으로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장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걸고 나온 것이다.

정 장관은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참여연대 대표를 지낸 이력을 갖고 있으며, 그의 철학과 그간의 행보만으로도 충분히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으며, 왜곡된 성의식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인사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토록 여성운동계의 입장과 거의 동일한, 혹은 누군가에게 강력한 ‘꼴페미’로 못마땅하게 비추어지는 이가 여성가족부 장관이 되었다는 것은 여성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통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새 정부에서 여성주의 시각을 가진 훌륭한 인물이라고 하더라고 여성가족부의 그간의 역할은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여성정책은 실제로 ‘돌봄하는 여성’에게만 맞추어져 있었고, 과거의 가족형태를 강화하는 정책 일색이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가족의 구성도 달라지고, 1인가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엄마, 아빠, 자녀로 구성된 ‘곰 세 마리’ 가족은 더 이상 표준모델이 아니다. 현대 여성들은 ‘82년생 김지영’을 자처하면서 기존의 ‘가족 돌봄’의 역할을 강요하는 지옥(가정)에 뛰어드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사업은 두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 어떤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인가. 둘째, 어떤 가족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인가. 해답은 현대사회의 공동체(가족)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여성의 역할을 제고하는 것이다. 여성이 일이나 가정의 갈림길에서 제약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지금처럼 터무니없는 성별 분업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녀 임금격차 해소가 시급한 해결과제이며, 가족 돌봄의 역할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폭력을 바로잡아야 한다.

여성의 문제는 실제 여성이 잘못해서 생겨난 문제가 아니며, 비뚤어진 운동장 때문에 생겨난 문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다른 부처 간 협력이 가장 중요한 곳이다. 여성가족부가 강력한 집행력을 가지려면 여성가족부의 위상이 지금보다 더욱 높아져야 하며, 전 사업에 적용된 성 인지 정책들도 제도적 허울이 아니라 실제 적용가능하고 강제할 수 있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성 평등한 사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성가족부의 역할은 그 필수사항을 강제하는 강력한 전초기지여야 한다. 언젠가 여성가족부의 명칭도 바뀔 날을 기다린다.
 

이선미 (춘천여성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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