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정가(正歌) 가객(歌客) 박주영

정가(正歌)는 아정(雅正)하고 기품 있는 노래다. 판소리나 민요가 일반 백성들의 노래라면 정가는 양반들의 음악이다. 노래와 반주 형식이 잘 갖추어진 가곡, 성악으로서의 가사, 향유층이 가장 넓은 시조로 나뉜다. 정가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가곡은 무형문화재 30호로 2010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남창 가곡은 26곡, 여창 가곡은 15곡이 있다. 가사는 12가사가 전해지는데, 기교가 많고 주로 중인계층이 향유했다. 시조는 향유층이 가장 넓다. 정가 가객(歌客)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이름조차 생소한 ‘정가’를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처음엔 마치 중국의 경극인가 싶었고, 이내 참으로 긴 호흡에 1분을 참고 지켜보지 못했다. 정가가 지루하다는 선입견 탓이었을까? 외고집 같고 융통성 없어 보일 가객의 모습을 상상한 기다림은 반전(反轉)이었다. 다부진 그녀의 입담으로 정가의 멋을 들어보자.

"정가는 '정신수양'의 음악"이라고 말하는 박주영 가객.    이철훈 시민기자

빨간 원피스를 입고도 전혀 화려하거나 튄다는 느낌 없이 단아한 모습으로 마주한 그녀. 정가하는 박주영(40) 가객이었다.

“저는 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가야금으로 국악에 입문했어요. 판소리나 민요는 감정을 표출하는 음악이죠. 반면 정가는 지극히 절제하는 음악이에요. 여창(女唱)의 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정적이고 절제된 음악이죠. 단아하고 정적인 정가 소리가 제 가슴을 뛰게 했고 제 목소리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기악으로 시작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노래를 잘 따라 부르고 좋아해서 이내 가야금을 버리고 정가로 길을 잡았어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을 듣기보다 부르기를 좋아했다는 그녀. 본인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보고 감상도 하며 일찍이 음악으로 진로를 정했다는 그녀가 국악에 입문하게 된 것은 친척들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고 시절 가야금을 버리고 비인기 분야인 정가로 전향한 이유에 대해 담담하지만 심지 굳은 답변을 한다.

“악기는 악단에 소속돼 연주가로 활동하거나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에요. 하지만 정가는 기회가 극히 적죠. 국립국악원에 유일하게 정가 파트가 있는데 6명이 전부예요. 그 중 여자는 3명입니다. 정가를 하는 사람이 전국에 100명 남짓 되죠. 나머지는 열악하지만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죠. 활동의 기회는 적지만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잠시 후회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귀소본능처럼 다시 가곡을 부르게 되더라고요. 판소리나 민요를 들을 때 몰랐던 정제된 신비로움과 감동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중독된 것처럼 빠져들었고 그렇게 보낸 세월이 23년이네요.”

정가는 감상하는 음악이라기보다 자기가 느끼는 매력을 노래하는 것이란다. 인지도가 현저히 낮은 정가를 알려내야 하는 의무감과 사명감에 그녀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였다. 정가는 이론상 정립되어진 것은 없다고 한다. 그녀는 정가의 창법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정가는 본래 호흡이 긴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어요. 가장 느린 만대엽(慢大葉)조차 부를 수 있었기에 존재했을 거고요. 덩치가 좋고 호흡이 긴 사람이 불렀던 것이 아니라 부르는 스킬이 있었던 거죠. 복식호흡을 저장했다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호흡을 쓸 줄 아는 공력이 생기도록 집중하다 보면 정신수양이 되는 것이죠. 백조가 물위에 우아하게 떠 있지만 물밑에서는 발버둥을 치는 것과 비슷해요. 판소리나 민요는 입창이고 발림이나 기교가 있어 흉식호흡도 하지만 정가는 발성 자체가 달라요.”

무형문화제 41호인 이양교 선생에게 사사했다는 그녀. 학부와 대학원에서 정가를 전공했다며 유난한 가곡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정가에서도 가곡은 겉소리와 속소리가 대비를 이루는데, 그것이 신비롭고 매력 있어요. 겉소리로 소리가 담장을 넘어 갈쯤 속소리로 담장을 넘지 않도록 조절을 하죠. 가곡을 잘 부르고 싶고 계속 하고 싶어요. 가사와 시조는 악기의 반주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수선가락(노래하는 사람의 곡조를 따라가며 연주하는 가락)에 맞춰 부르지만, 가곡은 별도의 반주가 존재해서 예술성도 뛰어나요. 양반의 노래를 한다는 자긍심이 있죠.”

양반들은 정가에서 풍자나 자연, 사랑을 노래했다. 기생학교였던 ‘권번’에서도 정가를 하는 기생은 1패 기생으로 격조가 있었다. 그런 정가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쉽지 않은 길을 먼저 간 선배로서 후학들에게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선지자의 고단함일까? 그러나 그녀의 신념은 겸손하고도 흔들림이 없다.

“저는 어디까지 가야겠다거나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보다는 그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목표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라 본질에 입각해서 무대에 서고, 욕심이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구나’ 라는 느낌을 청중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결혼과 출산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길을 끊지 않고 하고 있다는 데 자긍심을 갖고 있어요.”

정가를 알려내고 대중화 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감을 느끼지만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창작이나 편곡으로 친근하게 알리기 위해 애도 쓴다. 그러나 전통의 정체성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는 터라 그녀의 역할이 더욱 무겁다.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느냐의 문제인데, 저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결국은 전통 잇기가 최종 목표예요. 젊은 사람들은 알려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변형을 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국악도 서양악도 아니고 뭐냐는 비판의 소리를 듣게 되죠. 창작과 편곡은 전통을 알려내는 소통을 위한 연결고리로 활용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가교역할을 잘 해야 하는 위치인 것 같아요.”

그녀는 서울에서 1회, 춘천에서 3회의 개인공연을 했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하는 공연이라 부담스럽고 힘들지만 문화콘텐츠과정을 밟으며 스스로 기획부터 공연까지 행보를 이어갔다. 공연기획 때문에 정작 공연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도 굳이 학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정가를 학문적으로도 정립하고 싶어서다.

“10년 전만 해도 강원도에서 정가를 공연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우여곡절을 겪으며 2015년 춘천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전통을 고수하면 너무 지루해 사람들의 마음이 닫힐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대부분 창작적 요소를 가미해서 공연하다 지난해에는 전통만으로 공연했는데도 반응이 좋았어요. 예전에는 티켓을 손에 쥐어줘도 오지 않았는데, 요즘은 인식도 높아지고 정보공유가 빠르다 보니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저를 기다리는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아! 정가하세요?’라고 알아주는 분도 늘고 있고요. 제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저를 기다리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과 의무감이 더 커졌어요.”

국악은 대중을 울리고 웃길 수 있는 흥의 음악이다. 우리는 흥에 익숙하지만 정가는 ‘멋의 음악’이라고 정의하는 그녀. 정가가 줄 수 있는 기대효과는 무엇일까?

“현대인들은 빠른 것에 익숙하죠. 속도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은 오히려 ‘느림’으로 회귀하는 정신수양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음악이 절제된 음악이라 정신수양으로 다가가면 좋을 것 같아요. 시조는 음이 많아야 2~3개로 말하듯이 하는 노래예요. 그래서 목소리가 좋거나 음악성이 뛰어나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죠. 감상보다 본인이 좋아서 노래하고 그 에너지를 나눠주는 음악이죠. 정가 공연은 마치고 나면 분위기가 숙연해져요.”

민요와 판소리가 대중가요나 팝이라면 양반들의 풍류음악인 정가는 클래식에 비유할 수 있다. 정가는 다양한 분야와 결합이 가능해서 상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가 쉬울 것 같다. 다도 시연과 정가가 만났을 때 시각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가 시너지 효과를 낸 경험을 통해 지역의 문화재를 정가로 알리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오는 9월에는 정약용의 시를 넣어 노래할 예정이라는 그녀. 정가 홍보대사로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음악을 통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가도록 응원한다. 언젠가 군더더기 설명 없이 정가하는 박주영을 모두가 아는 그날을 위해.

 

 

 

임희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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