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핵가족화 되어가는 요즘이야말로 가정의 존재가 더 부각된다. 주변에 ‘혼밥’, ‘혼술’ 등이 유행한다. 가정이 해체되는 집도 많다. 가족을 건사해야하는 가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져만 간다. 이상의 시 ‘가정’을 더듬어본다.

문패가 걸린 제 집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제웅(짚단인형)처럼 자신은 바깥에 내동댕이쳐진 채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집은 앓고 있고, 누군가 도장을 찍고, 수명을 헐어서 전당 잡혀야 하는 신세. 도무지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나는 문고리에 매달린다.

시인 이상(1910~1937)은 1936년 2월에 이 시를 썼다. 그 특유의 띄어쓰기가 없는 시다. 결혼 몇 달 전에 쓴 이 시에서 비극적 결말을 예감한 것 같다. 뮤즈 같던 아내 변동림과의 3개월 남짓 결혼생활을 뒤로 하고 일본 동경의 골방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내 집 아파트 문을 열 때 갑자기 열리지 않으면 당황한다. 겁이 덜컥 난다. 혹시 누군가 비밀번호를 바꿨을까봐? 쇠사슬 늘어지듯 문고리에 매달렸던 이상을 생각해본다.

허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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