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하고 찌는 날씨에 하루 몇 번씩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틀고 에어컨을 쐬었더니 결국 지독한 몸살이 왔다.

여름마다 걸리는 냉방병이 도진 것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비몽사몽인데 수국이 피었다고 지인이 사진 한 장 보내왔다.

내 얼굴은 열에 들떠 벌겋고 수국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던 제자의 입술처럼 잉크빛이다. 수국도 꽃몸살이 났음이 틀림없다.

주먹밥처럼 뭉친 꽃잎들의 이마에 송골송골 파란 땀이 맺혔다. 만유일체는 유심조라고 했던가? 제 본분에 충실한 꽃나무를 품고 제멋대로 신열을 쏟아내는 하오(夏午), 목숨이 환해지라고 밝고 건강한 시 한 편 집어 든다.

송병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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