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아트페스티벌’을 만든 사람들

2002년 어느 날, 공연예술 분야의 동료들 몇몇이 모여 모처럼 술잔을 나누며, 오랜 만의 회포를 풀고 있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속절없이 웃기도 하고, 공연을 하면서 아쉬웠던 기술문제와 그 해법을 나누며 밤이 깊은 줄 몰랐다. 생고무를 사용한 엉성한 무대 때문에 젊은 무용수가 골절을 입어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애석함과 분노로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하나의 결의를 하게 된다.
“그래, 우리가 한 번 제대로 사고치자. 무대가 무엇인지, 어때야 하는지 제대로 보여주자. 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자!” 그 새벽의 결의가 올해로 16회를 맞는 ‘춘천아트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강신애(인턴), 최웅집(총감독), 윤혜아(인턴), 이윤숙(홍보팀장), 이종훈(기술감독), 손세리(무대감독), 허은영(운영팀장), 홍준석(제작감독)

무대의 원칙은 간단했다. ‘공연자와 스태프 모두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되 최고의 기획, 최고의 기술력, 최고의 장비로 최고의 무대를 만든다!’ 제일 더운 8월, 제일 힘들다는 야외무대, 그 야외에서 제일 완성하기 어렵다는 무용이라는 장르를 ‘굳이’ 택해 축제를 시작한 사람들과 무모한 도전 16년. 춘천아트페스티벌을 만든 사람들의 무대 ‘뒷담화’로 8월을 열어본다.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쟁쟁한 출연자들을 무상으로 오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날, 그 술자리에서 과감하게 사고를 친 최웅집 감독이 처음 출연자들에게 내건 조건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신선했다.

“’우선, 우리가 꾸밀 무대는 야외이고 최고의 무대를 만들 것이다. 돈 때문에 포기하거나 수용했던 것들이 많은데, 돈만 아니면 꼭 하고 싶었던 바로 그 무대, 무대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무대를 만들 것이다’ 그랬어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야외무대가 그렇게 허접스러웠어요. 댄스 플로어 대신 생고무판을 깔아서 발목을 다친 무용수가 무용인생을 접었는데, 다음 해에도 그 고무판을 또 깐 거예요. 댄스 플로어 비용을 아낀 대가로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반성이 없는 거죠. 본질에 가깝게 가자는 것은 단순히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마땅히 갖추어야 할 최소한을 충족시키는 무대를 만들자는 거였어요. 당시에는 충분한 리허설 시간도 없이 즉흥으로 와서 조명과 음향을 바로 맞춰 하기도 했는데, 그건 우연의 산물이지 예술도 디자인도 아니잖아요. 지금도 최소 3일전 리허설을 강조하고 있어요. 스태프들에게는 일단 우리가 금전적, 물리적 제약으로 공연할 때 받은 스트레스를 우리가 우리 역량을 맘껏 펼침으로서 해소하자고 했어요. 그때는 조립식 무대가 없어서 목재를 사서 직접 짜고 깔았어요. 땀 흘리고 힘들어하면서도 어느 샌가 다음해면 또 춘천으로 몰려들었죠. 그 모두가 어린이회관 야외무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상상이었고 시작이었죠.” [최웅집]

2011년을 끝으로, 춘천아트페스티벌은 어린이회관이 KT&G 상상마당에 매각됨으로써 몸짓극장으로 옮겼다. 당시 지역사회에서도 매각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집약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국의 예술인들은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무대 공간을 잃었다. 여전히 아트페스티벌 사람들은 어린이회관 야외무대 ‘앓이’를 끝내지 못한 듯했다.

어린이회관 야외무대를 쓰지 못하게 된 아쉬움을 내려놓는 데 몇 년 걸렸어요. 실내에서 훨씬 수월하게 무대를 만들면서도 우리들은 여전히 ‘아, 어린이회관이 더 재밌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거예요. 사실 춘천아트페스티벌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니까 여러 지역에서 예산까지 책정해서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이 어린이회관의 가치를 넘는 야외무대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도전의식이 자극되고, 더 의기투합 했던 거 같아요. 매년 비 오고 덥고 힘들어도 그때가 오면, 어린이회관 무대에서 하고 있었거든요.” [홍준석]

“제게는 아트페스티벌 자체가 아웃도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요. 나의 아트페스티벌은 야외인데, 실내로 들어와서는 사실 적응을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다시 그곳을 찾고 싶어요. 어린이회관 야외무대 이상의 야외는 없는 거 같아요.” [이종훈]

그 아름다운 야외 공연장을 놓친 안타까움과 동시에 지켜내지 못한 미안함이 올라온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은 무대의 완결성뿐 아니라 현장인력 양성도 강조하고 있다. 최 감독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실전 없는 강의식 교육이 현장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점을 늘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이 무대를 그냥 만들기보다 처음 접하는 후배들을 지도하는 기회로 삼자는 데 의기투합 해 워크숍을 운영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연예술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현장으로 뛰어든 이들이 적지 않다. 춘천아트페스티벌에서 기술감독을 맡고 있는 이종훈 씨 역시 2007년 자원봉사와 워크숍을 통해 공연예술과 만나게 되었다.

춘천 아트페스벌의 또 다른 특징은 매년 다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묘한 중독성인 듯했다. 한 번 온 사람은 바로, 혹은 몇 년 뒤에라도 다시 오는 경우가 많았다. 2010년 자원봉사로 처음 춘천아트페스티발과 인연을 맺은 이준우 씨는 아트페스티발이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부산 집을 떠나, 서울 사무실에 짐을 풀었다. 수년째 뜨거운 여름의 한복판, 춘천을 찾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전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하잖아요. 제겐 여름을 보내는 방법 중에서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었어요. 춘천 아트페스티벌에서는 제가 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여기 온 첫 해엔 숯 키워서 고기 굽는 법, 철 구조물 세우는 법을 배웠고, 지난해엔 커피 내리는 것도 했어요. 더 새롭게 배울 게 없어질 때가 되면 그땐 안 오겠지요. 아직까지 여기서 지루함을 느껴본 적은 없어요.”

그런가 하면 관객으로 왔다가 결국 스태프로 자리 잡은 일도 있었다. 운영팀장인 허은영 씨는 처음 공연을 보러 왔다가 얼떨결에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몇 년 후에는 직장을 이곳으로 옮겼다.

“처음, 그 공연을 지켜보면서 울었어요. 공연 자체도 좋았지만, 뭔가 뜨거운 에너지가 느껴지는 거예요. 그게 뭘까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춘천아트페스티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감동이었어요. 그런 정성스러움이 작품에 배어나왔던 거죠.”

수년째 함께 하고 있는 정진철 조명감독은 춘천 아트페스티벌을 ‘스태프들의 동창회’라고 한다. 기부로 참여하는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음으로 말문을 연다.

“밥을 잘 줘요(웃음). 아트페스티벌에서 하는 일은 분명 노동이죠. 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 만나서 한판 노는 느낌이기도 하고 휴가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즐거움과 희열은 정말 크죠. 젊었을 때는 아는 선배들에게 이끌려 참여했는데, 지금은 어느새 우리가 지휘하고 후배들을 양성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어요. 그렇게 축제현장에서 서로 만나 교류도 하고 서로의 작업을 보면서 자극도 받고 새로운 실험도 하고요. 자연스럽게 기술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성장하고 발전하는 거 같아요. 무보수라고 하지만, 사실 금전적 가치 이상의 기쁨을 얻어오는 거 같아요. 여름이면 제 몸도 마음도 의례 가야 하는 것으로 준비하고 있죠. 마치 중독처럼. 우리의 자부심이요? 오로지 ‘무대의 완결성’이죠.”

2012년부터 춘천아트페스티벌의 기획스태프로 참여한 이윤숙 홍보팀장은 함께 해온 스태프들이 이 축제를 왜 ‘스태프들의 명절’이라고 하는지 이해된다고 했다. 그녀는 춘천아트페스티벌의 매력은 맘껏 상상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로움’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십시일반 하는 ‘참여의 문화’라고 한다.

“얼굴도 못 보고 6~7년째 티셔츠를 맞췄던 거래처 사장님이 이번 축제에 오신다고 하기도 하고, 해마다 우리 기념 티셔츠를 입고 오시는 관객이나 자원봉사자도 있고, 어떤 관장님은 옥수수를 삶아 오시기도 하고…. 또 공연 중에 비가 쏟아지는데도 그대로 우산 쓰고 내내 함께 해주기도 하고요. 어떤 분은 매년 휴가 때마다 오고 있다고 찾아와서 인사를 주시기도 해요. 왜 그러실까 했는데, 이제 이해가 돼요. ‘아, 관객들은 관객들 나름대로 이렇게 십시일반을 해주시는구나’ 싶어요. 공연을 끝까지 함께 즐겨주는 것으로, 매번 무대를 찾아와주는 것으로, 거래처에서 관객이 되는 것으로…. 공연자들도 춘천아트페스티벌의 관객들이 다르다고 해요. 관객들의 집중도가 높으니까 공연자들의 몰입도도 높아지는 거죠. 아티스트들도 관객들에게서 받아가는 에너지가 커서 춘천에 꼭 다시 오고 싶어해요.” [이윤숙]

“사실 처음 시작할 땐 저희도 오기가 있어서 무대의 질을 최고로 유지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과정이 스스로 공부도 되고, 출연자나 스태프 모두 ‘이 축제가 우리 것이다’, ‘우리가 호스트다’ 하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이제 더 이상 십시일반이나 노 개런티가 이슈가 아니에요. 자신들도 최고의 실력을 보이고, 그런 자신들과 견줄만한 팀들이 참여하길 기대하는 거죠.” [홍준석]

모든 참여자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움직이고, 자존심을 걸고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것이 암묵적으로 공유되고 끊임없이 자가발전 하는 무대와 사람들. 16년의 아트페스티벌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새로이 일을 시작한 인턴들은 곁에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론 웃고 때론 진지한 표정이다.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참여한 사람들에게 왜 그토록 깊은 애정이 생기는지 이해된다는 혜아 씨, 아트페스티벌을 아는 사람만 만나도 뿌듯한 걸 보면 자신도 식구가 된 듯하다며 발그레 웃는 신애 씨. 자신의 시간과 역량을 투자해서 매번 먼 길을 온다는 선배들의 열정이 궁금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무대감독 세리 씨. 앞으로 아트페스티벌은 바로 이런 신예들의 손을 거쳐 매번 새로운 상상, 새로운 기록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8월이다. 다시 춘천아트페스트벌의 계절이 왔다. 그리고 이들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다.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온 정성을 기울일 이들의 땀방울이 거룩해 보일 터이다. 8월 8일부터 11일까지 춘천몸짓극장과 담작은도서관에서 무용,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뜨거운 만남을 기다린다. 모든 공연은 예약제며, 입장은 무료다. 다만 ‘감동후불’은 환영. 문의=033-251-0545

 

 

 

 

 

 

허소영 시민기자/ 사진=춘천아트페스티벌

※ 제87호(7월 25일자) 11면 <인터뷰>에서 유기택 시인의 첫 시집 발간일은 2012년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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