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춘천’ 대표 송승철 강원도립대 총장

부산 영도. 가난한 동네 좁은 골목 사이를 뛰어다니는 총명한 꼬마아이. 마을 사람들은 꼬마의 성장을 지켜보며 이루지 못한 꿈과 세상을 향한 꿈을 아이의 미래에 기원했다. 작고 가난한 동네에서 유일하게 월급을 받던 아버지와 그 아들. 유난히 책을 좋아해 중학교 입학하기 전 이미 영국 소설을 탐닉하던 꼬마는 그렇게 마을 어른들의 꿈과 함께 성장했다.

흔히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지만, 송승철 대표는 인문학 일반의 위기가 아니라 ‘대학 인문학’의 위기라고 잘라 말했다. 

동네 어른들은 제가 법학을 전공하길 바라셨어요. 그런데 영문학으로 진로로 선택하니 많이들 실망도 하고 그러셨죠. 영어를 잘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어릴 적부터 워낙 책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조금 쉬운 길을 선택한 거였죠. 재미있게 읽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기억은 희미한데, 조금 조숙하게 책을 읽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테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책들을 읽었죠. 중학생이 돼서 비로소 책에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깊이를 알고 제대로 읽은 것은 대학교에 가서였어요.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 김원일의 《노을》….
그에게 영향을 끼친 작품을 묻자 잠시 고민을 하던 그가 내놓은 책들이었다. 유학을 가기 전 비평가로 활동했던 그는 비평가로서 이 작품들에 ‘삶의 깊이’가 진하게 녹아 있다고 표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왜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그의 표정에 옅은 그늘이 졌다. “이런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고 이야기를 꺼낸 그의 이어진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12년 대선을 치르고, 그 결과를 보면서 정말 절망했어요. 그 선거를 겪으며 저는 스스로 패배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아주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까지 저는 인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였거든요. 내가 하고 있는 인문학이 정말 영향력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소력이 없구나. 사람들이 전혀 듣지 않는구나. 그해 겨울 참 많은 시간을 춘천의 강변길을 걸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요.

장고 끝에 그는 시민운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에 이르렀다. 그가 가장 잘 하고 잘 아는 문학으로 하는 시민운동. 그렇게 그는 ‘책 읽는 춘천’을 만들었다. ‘책 읽는 춘천’의 핵심은 ‘시민 만들기’다. 사회의 일원으로 도덕적 판단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생활정치를 통해 스스로 의견을 내는 시민을 만들어내자는 것이 그의 다짐이었다.

영문학은 우리와 굉장히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고, 다른 역사, 다른 생활을 담고 있어요. 그런데 영문학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 사회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선을 갖게 하죠. 그리고 영문학은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상을 깨끗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 줍니다. 도덕적 판단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이 들어 있는 문학이에요.

영문학을 통해 얻은 사회적 통찰력으로 그는 책을 통한 시민운동인 ‘책 읽는 춘천’을 만들었다. 그게 벌써 4년이 됐다. 사회적 의제와 관련된 문학을 선정해 시민들과 매달 한 번씩 모여 책을 읽고, 주제를 통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책 읽는 춘천’은 많은 때는 회원이 100명이 넘은 적도 있어요.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책 읽는 춘천’을 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는데, 또 한편 걱정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떤 이는 세 명이 올까말까 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생각했던 건 하나였어요. ‘세 명이 와도 3천명이 오도록 준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누구도 거절하지 않았어요. 인문학의 부재를 걱정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분들이 인문학에 대한 열망과 갈증이 있었던 덕분이겠지요.

많은 이들이 인문학의 부재를 걱정하는 요즘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종종 들려오니 이대로 시대의 철학은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송 대표는 단호하게 말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과장이라고. 그는 위기는 인문학 전체가 아닌 ‘대학 인문학의 위기’에 있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인문학에 의지하고 인문학을 찾는 사람들은 꽤 많아요. 우리가 말하는 위기는 대학 인문학의 위기입니다. 그 위기는 대학의 인문학이 시대의 삶과 멀어진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에 치우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책 읽는 춘천’의 경우만 봐도 그래요. 우리가 선정하는 책들은 쉽지 않은 책들이거든요. 그리고 인문학을 소비하는 패턴의 모임이 아니에요. 책을 읽고 저자나 역자를 초대해 함께 토론하고 사회적 이슈를 책을 통해 풀어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2012년 겨울. 그는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가기에 이미 늦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고 했다. 사회의 비정상이 심화되고 청년들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친 헬조선의 그림자. 희망이 없던 사회에서 사람들은 지난겨울 대반전을 일으켰다.

촛불을 지나오며 시민들이 자각했어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 과거 시민사회의 성장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어요. 그동안 발현되지 못했을 뿐 역량을 축적해 온 것이죠. 이 반전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지켜봐야겠죠. 그동안 우리는 시민으로서의 사고가 아닌 국민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왔어요. 이제는 시민으로서 생각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 생활정치를 실현해내야 해요.

열 권의 책을 살펴봐도 그 중 한 권의 책을 찾을까말까 하다는 그는 매주 토요일 연구실로 출근을 한다. 되도록 토요일에는 일정을 잡지 않고 아무도 없는 학교 연구실에 앉아 종일 책을 읽는다. 책을 위해 오로지 내어주는 1주일 중 단 하루. 하루쯤은 자신을 위해 책 읽는 시간을 선물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머금은 그가 ‘책 읽는 춘천’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뭔지 아냐고 물어왔다.

우선 책이 제일 중요해요. 너무 길어도 안 되고, 너무 어려워도 안 되죠. 회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선정하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그 책의 저자나 역자를 섭외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춘천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와 샌드위치입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책 읽는 춘천’에 참여하는 직장인 회원들을 위한 그의 따듯한 배려다. ‘칼퇴근’이 힘든 직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도착해 배고픈 채로 함께 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는 그는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한 조각에 마음을 담아 내어준다.

1986년 한림대 영문학 교수로 강단에 서 지금까지 학생들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는 송승철 대표. 그는 2015년 강원도립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해 위기에 빠져있던 학교를 되살렸다. 지난달 23일 교육부가 실시한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2차학년도 이행점검에서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서 전면 해제됐다. 2015년 재정제한 대학으로 지정돼 국가장학금 지급중단과 정부사업을 수행할 수 없어 절대위기를 맞은 지 꼬박 2년만이다. 또 2018학년도부터는 입학금 전면폐지를 결정했다.

올해 초엔 대학에 학생 합창단을 만들어 강릉시립합창단의 도움을 받아 꾸려가고 있다. 성적에 밀려 가족과 멀리 떨어진 학교로 진학해 낮아진 학생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송승철 대표의 야심작이었다. 학생들은 노래를 통해 자신을 보여주고, 합창을 통해 화합을 배우고 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좋은 시민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그의 공공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김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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