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영화제가 들러준 소소한 이야기

9월 초, 춘천에서는 두 개의 영화제가 열렸다. 하나는 춘천 출신 이성규 감독의 죽음이 촉매가 되어 탄생한 제4회 춘천다큐멘터리영화제(1~3일)이고, 또 하나는 제11회 이주민영화제(1일)였다. 복잡한 개인사정 탓에 두 개의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관심을 놓을 수 없어서 행사장 부근을 기웃거리며 잠깐씩 들여다보았다.

사실 춘천에는 이렇다 할 영화제가 없다. 영상시대고, 영상물 제작이나 감상을 돕는 프로그램도 어지간히 많지만 지역의 문화로 정착한 영화제나 관련 프로그램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점이 아쉽다.

강원문화재단 영상위원회가 올해 3월 정식 발족해 영화제작 지원 시스템을 갖추었고, 영화와 관련된 콘텐츠도 적지 않다. 영화감상 소모임도 있고, 다큐를 중심으로 한 영화제작 동아리, 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감독들도 여럿이다. 이렇게 기반은 어느 정도 조성된 듯하지만 다큐든, 극영화든 제작환경은 매우 열악하고 지역을 매개로 한 영화행사는 간헐적이다.

춘천다큐영화제는 올해 4회를 맞으며 축제의 모양새를 두루 갖추는 등 한걸음 더 나아간 듯하나, 아직은 영화를 통한 이슈 개발은 약하고 영화제의 성격도 모호하다.
지역과 밀접한 결합, 또는 사회적 의제를 이끌어낼 주제 등이 크게 드러나지 않은 탓이다. 이에 반해 축제극장 몸짓에서 만난 이주민영화제는 이주민방송 MWTV가 주최하는 연륜이 제법인 영화제다. 춘천은 본격 영화제에 앞선 지역순회 상영이기는 했지만 친근감 있었고 사회적 이슈인 이주민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본 영화는 원주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영상제작 수업을 받은 원주·횡성지역 이주여성들의 작품, 그리고 이들보다 앞서 영화에 빠져든 일본에서 이주해온 모우에 히로코 씨의 작품이었다.

네 명의 이주여성들이 만든 짤막짤막한 영상들은 거칠지만 이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우리주변에 이주민 가족이 어떻게 녹아들고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카메라 워크가 서툴고 화면이 단조했지만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담아낸 영상 가운데는 순간순간의 재치가 담겨 공감과 정겨움이 가득했다. 그들은 제작후담을 털어놓는 자리에서 너무나 많은 순간 포기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다문화 강사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이들은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하지만 영상을 소통의 창구로 삼아 이 땅의 여성으로, 어머니로 살아가는 다른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어느덧, 우리의 울타리에 함께 있는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내기 영화인을 지도하고 작품을 감독한 모우에 히로코의 ‘마흔일곱’도 낯설지 않았다. 열심히 아내로, 엄마로 살아왔지만 어느 시간 무렵, 가족 모두가 따로따로이고 외로움을 느끼는 이른바 갱년기의 여성, 이 작품은 대다수 여성 관람객에게 많은 공감을 산 듯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도 갱년기를 잘 극복했는지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본 영화들은 이주여성들도 특별하지 않고,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여성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 영화제에서는 이외에도 낯선 땅에 이주해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다양한 삶을 담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사회 가까이에 공존하지만 잘 몰랐던 이들을 한발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에 충분했다.

영화가 예술적 가치나 기록적 가치를 충분히 담고, 완성도가 높아야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하지만 소통의 도구로서 영화가 갖는 힘도 주목하고 싶다. 우리 일상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함께 생각하는 의제를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 충실히 해냈으면 좋겠다.

유현옥 (문화커뮤니티 금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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