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이 퍼렇다고 한다. 퍼런색은 멍의 색이고 한(恨)의 색이고 독기의 색이다. 어둠이 감도는 진초록 파밭에 서면 늘 간담이 서늘하다. 어설프게 잡아당겨 이파리가 끊어지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매운 눈물을 쏟아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자라면 쓰라린 여자, 매운 여자다. 격렬한 오욕칠정을 겪으며 수없이 뽑히고 잘렸지만 우뚝 일어나 비릿한 세상을 간하는 여자다.

인상파로 불리는 모네의 작품은 찬란한 빛과 풍부한 색채가 살아 숨 쉰다. 강한 붓 터치로 표현한 그의 ‘정원’들은 빛에 의해 나타나는 순간적인 이미지와 화려한 자연의 떨림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어 마치 정원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까미유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는지 녹내장으로 인한 빛의 왜곡이었는지 그의 주조 색채는 서서히 초록빛으로 변해간다. 초록은 상실의 빛이다. 는 회색이 주조색이다. 홑이불을 뒤집어쓴 죽음의 빛깔은 흰색이다. 힘센 남자에게 단숨에 뽑히고 싶어. 파의 속이 텅텅 비어있다

송병숙 (시인)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