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평동 ‘고바우’ 부대찌개

시월도 벌써 중순이다. 가을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단풍이 지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한다. 쌀쌀해진 날씨에 따뜻하고 얼큰한 음식이 생각난다. 그래서 지인과 점심을 함께한 맛집은 후평동의 ‘고바우’. 부대찌개와 뭉텅찌개가 전문인데, 가격은 현금일 때 단돈 5천원.

기다릴 정도는 아니지만 빈자리가 거의 없을 만큼 많은 단골들이 알음알음 즐겨 찾는 식당의 점심시간. 가스렌지 위 전골냄비 속에서 햄, 소시지, 다진 고기, 치즈, 야채 등이 얼큰한 소스와 어우러져 팔팔 끓기 시작하니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마지막으로 라면사리를 하나 풍덩 넣으니 얼큰하고 푸짐한 부대찌개 한상차림이 완성.

반찬은 배추김치, 무생채, 어묵조림, 과일 샐러드 등 달랑 네 가지뿐이지만 모두 정갈하고 맛있다. 모양만 요란한 수십 가지 반찬이라도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고바우의 반찬에는 하나하나 안주인의 맛과 정성이 들어있다. 게다가 밥도 갓 지은 찰진 흑미밥을 듬뿍 퍼주니 대만족이다. 반찬이 아무리 좋아도 밥이 맛없으면 실망인데, 이곳에서는 부대찌개는 물론이고 밥과 반찬 하나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어린 시절인 1960년대 말 인천에 있는 미군부대 근처에서 몇 해 산 적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라 모두가 배고프고 굶주리던 시절이었다. 아침마다 미군부대에서 커다란 드럼통을 실은 리어카가 나오면 어머니를 비롯해 동네 아줌마들이 바가지나 냄비를 하나씩 들고 줄지어 꿀꿀이죽을 한 국자씩 사오곤 했다. 꿀꿀이죽은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잔반으로, 이를 수거해 동네주민들에게 팔곤 했다. 어머니가 가끔 이것을 사다가 김치와 콩나물 등을 넣고 얼큰하게 다시 끓여주는 날이면 모처럼 위장에 기름기가 끼는 날이었다.

직업군인으로 오랜 기간 연천, 동두천, 의정부 등 중부전선에서 지휘관 및 참모장교로 근무하며 부대찌개를 자주 접했지만, 부대찌개의 원조가 어릴 적 먹었던 꿀꿀이죽이었기에 한동안 가까이하지 않았다. 뒤늦게 다시 이곳 고바우에서 안주인의 따뜻한 인심과 함께 얼큰한 부대찌개를 맛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박백광 시민기자

고바우 춘화로 373-1 256-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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