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의 민족시인 한용운(1879~1944)의 명시 <반비례>다. 3연으로 된 시인데 각 연의 두 번째 시행의 말미에는 ‘그려’를 넣었다. 시인의 고향인 충청도에서 자기 말을 강조할 때 쓰는 사투리리라.

<나룻배와 행인>에도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밤은 고요하고>에서도 ‘꿈조차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려’ 가 나온다. 시에는 ‘흑암(黑闇)’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있다. 짐작컨대 검을 흑, 어두울 암. 검고 어두운 상태다.

그런데 시를 읽다보니 노랫소리가 침묵이라니? 환한 얼굴이 흑암이라니? 어두운 그림자가 광명이라니?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에서처럼 시인은 모순어법을 쓰고 있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은 <반비례>가 되었다. 낮이 길어지면 밤은 짧아지고 사랑이 커지면 미움이 작아진다. 낮과 밤, 사랑과 미움은 서로 반비례 관계이겠다.

노래 부르지 않아도 당신의 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아도 당신의 얼굴이 보이고, 깜깜해도 당신의 그림자가 비치는 경지를 시인은 자분자분 들려준다. 여기서 당신(님)은 누구일까? 나는 ‘희망’이라고 놓고 싶다. ‘당신’을 ‘희망’이라고 바꾸어 다시 읽어본다. 언젠가는 들려와야 할 희망의 소리, 희망의 얼굴, 그리고 내가 사랑해야 할 희망의 그림자까지 시인은 깨닫게 해준다 ‘그려’.

허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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