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책, 세상을 열다 - 낭독이 있는 오후’를 마치며

“나는 너의 친구이자 선배고 언니이자 여행의 동반자이니 믿고 의지하며 행복한 여행을 이어가자.” - ‘안개 속을 걷는 근육맨’ 이혜경(학부모)

“아이에게 좋은 교사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싶어졌다.” - ‘행복한 사막의 꽃’ 정연실(교사)

“노을이 지는 시간이어서 좋았고, 내 감동을 전할 수 있어서 좋았고, 천천히 읽어가서 좋았다. - ‘해질녘’ 황지우(3학년)

“처음 경험한 낭독이 있는 오후, 사람들이 저마다 인상 깊었던 대목이 다르다는 점이 신기했고, 남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왠지 가슴에 쏙쏙 더 잘 들어오는 듯 했다.” - ‘천년이 지나도 쓰러지지 않는 통나무집’ 이가윤(2학년)

“비와 바람과 시냇물처럼 작은 나무의 친구가 되어 위로해주고 싶었다.” - ‘망개 찾아 떠나는 아이’ 정지윤(1학년)

13일 춘천여중에서 열린 ‘낭독이 있는 오후’ 책 축제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진지하게 낭독을 감상하고 있다.

‘맑게 높게 푸르게’, ‘행복하게 춤 춰’, ‘가을바람 솔솔’, ‘바람이 전하는 말’, ‘투명한 하늘’, ‘나무 그늘에 앉아’, ‘이깔나무 숲 바람에 깃들어’…. 자연을 닮은 인디언식 이름들. 10월의 어느 해질녘, 도서관 한편에 낮은 양초를 밝히고 둘러앉은 50여명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어느새 책 속의 ‘작은 나무’가 되어 비와 바람과 새와 시냇물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 13일 춘천여중에서 열린 ‘2017 책, 세상을 열다 - 낭독이 있는 오후’의 한 장면이다. 해마다 진행되던 다양한 독서행사들, 올해는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자 했다. 학생, 학부모, 교사. 이들 교육공동체 모두가 참가해 공감·소통·배려를 몸소 느끼게 하는 것. ‘2017 교육공동체가 함께 하는 가을 책 축제’는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되었다.

영화 ‘노팅힐’의 OST가 바이올린의 선율을 타고 감미롭게 흐르며 시작된 낭독이 있는 오후, 함께 읽은 책은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다. 진행자도 없었다. 지켜야 할 격식도 없었다. 그저 미리 읽고 가슴에 담아 둔 글귀와 마음들을 낮고 묵직하게 한 사람씩 소리 내어 전하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울림을 느끼느라 주변은 조금씩 숙연해져 갔다.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소박함과 삶과 죽음의 순환을 이치로 받아들이는 겸허함. 정부군에게 쫓기는 눈물의 여로에서조차 자신들의 영혼을 지키고자 한 의연함과 더 많이 이해하려 노력한 영혼의 마음들. 이는 이제 더 이상 인디언 체로키족의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날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된 ‘낭독이 있는 오후’ 그 공간에서만큼은. 어느 순간 우리 모두는 자연과 벗하며 밝고 순리대로 살아간 체로키, 그들이 되어 있었다.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낭독의 힘이었을까?

마무리 시간, 나뭇잎 엽서에 소감을 쓰며 교사로서 떠올린 생각이 있다. 나의 교육은 얼마나 자연스러웠던가? 적어도 수업과 교실이라는 시공간에 ‘작은 나무’들을 가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조용히 숨을 거두며 남긴 할머니의 낮고 평온한 목소리에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

고미정 (춘천여중 교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