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을 배웅하느라 선재길을 걸었다. 머지않아 이곳이 흰 눈으로 덮일 것이다. 나를 찾다 지친 사람들이 너럭바위에 돌탑을 쌓았다. 한두 개 얹은 것도 있고 여러 개 올린 것도 있다. 몸을 겹친 돌들이 많을수록 돌탑은 높았고 아름다웠다, 아랫돌이 윗돌을 그득그득 견디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그늘은 슬픔이다. 도를 얻기 위해 팔뚝을 잘라바친 선승처럼, 제 몸을 헐어서라도 자식에게 물리고픈 부모처럼, 인간은 절절한 그 무엇을 위해 흰 눈을 그득그득 견디는 것이다. 아니, 견뎌야 할 겨울 하나 갖고 싶은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난 선재동자의 눈동자가 볕뉘에 잠깐 스치운다.

송병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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