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박은경

“디자이너가 되려고 했었다. ‘너희 세대는 여자도 사회에서 제 역할을 가져야 한다’며 엄마는 나에게 디자이너를 권유했고, 그게 그대로 나의 꿈이 됐다.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화실을 다녔는데, 다시 선생님의 설득에 회화를 전공하게 됐다.”

20대 때는 그림에 대한 눈조차 트이지 않았기에 더욱 힘들었다는 박은경(47) 작가. 그림에 대한 한계에 일찌감치 부딪쳤고, ‘나는 누구인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자꾸 자기 안으로만 파고들었다. 그러니 작업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림은 그녀에게 그대로 고통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박 작가는 주로 메시지가 강한 그림을 그렸다. ‘정치와 미술’, ‘페미니즘 전’ 같은 곳에서 주로 전시를 했다. 그녀에게 그림은 늘 치열한 싸움이었고 처절한 고통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남편이 2007년에 먼저 춘천에 와서 정착했고, 2년 정도 주말부부 생활을 하다가 아이들이 아파서 춘천으로 이사를 온 게 2009년이었다. 당시 막내가 다섯 살이었는데, 어린이집 보내놓고 동네 산책을 참 많이 했다. 답답하거나 고민이 생기면 지금도 자연 속을 걷는다. 그러면 그 속에서 답을 찾게 된다.”

줄곧 도시에서만 살았던 그녀가 시 외곽으로 이사를 와서 마주한 자연은 너무나 예뻤다. 마당은 물론 동네 어귀에 피어난 수많은 야생화들을 보며 10여 년간 놓았던 붓을 다시 들고 싶어졌다. 주로 아크릴을 써 100호 이상 대작을 해왔던 그녀였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다시 유화를 펼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선택했던 것이 수채화였다. 당시 퀼트에도 열을 올렸었는데 그 때 남은 조각천을 활용해 시골 동네 골목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림 그 자체가 좋다.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에너지를 얻는다. 한 가지 주제가 아닌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재밌다. 이제야 그림은 정말 좋은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림은 늘 고통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서 참 좋다.”
하나의 주제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은 힘들다. 만나는 이들과의 관계를 이야기로 풀어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그녀. 그래서 그녀의 그림 속에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마당에 빨랫줄을 걸고 가지런히 널려있는 빨래들, 담장 틈을 비집고 나온 어린 풀꽃. 그녀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지나치는 작은 풍경들이 담겨져 있다.

“정형화된 갤러리 전시도 좋다. 하지만 도서관이나 병원 등 사람들이 많은 곳을 주로 전시 공간으로 선택한다. 나는 나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

얼마 전 1인 출판사 ‘비어 있는 달’을 설립한 박은경 작가. 출판사를 꾸렸으니 이젠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책으로 엮어 매년 한 권씩 선보이는 게 꿈이라고.

 

김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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