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교직생활 정년을 앞둔 이혁종 선생님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훈화를 위한 조회대가 아이들의 공연무대로 바뀐다면? 축구 골대 자리에는 자연 놀이터가 있다면? 학교에 아이들이 숨어 있을 만한 숲이 있다면. 가벼운 산책, 봄에는 쑥을 캐고, 꽃전을 부쳐 먹을 진달래가 피고, 가을에 밤과 도토리를 주을 수 있고, 작은 삽으로 땅을 파고 놀 수 있고, 넘어진 나뭇가지로 아지트를 만들 수 있고, 겨울엔 눈썰매도 탈 수 있는, 고라니, 다람쥐, 청설모가 있는 그런 숲이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런 학교를 만났다.

그런데 그 학교의 숲은 관공서에서 돈을 들여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학교 숲 이야기.

호반초 아이들과 텃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는 이혁종 선생님. 이제 정년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우공이산(遇公移山)’이라고 했다. 이제 정년을 석 달 남짓 남겨 놓고, 교직에서의 마지막 겨울방학을 남겨 놓은 평교사가 그러했다. 마을로 이어진 개인 사유지인 야산을 영구임대 받아 그곳에 아이들을 위한 숲을 만들었다. 마을과 학교를 잇는 다섯 갈래의 길을 날마다 조금씩 만들어갔다. 그 앞으로 400평 정도의 텃밭을 일구었다. 학교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과 쓰레기 더미였던 곳을 텃밭으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던 길을 숲 산책로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7년 동안 호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온 선배교사의 하루하루는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 듯 그렇게 숲길을 내고, 해마다 텃밭을 갈고, 흙을 더 얹고 아이들과 씨를 뿌리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몹시 기르고 싶어서 가져다 놓은 토끼 한 쌍을 보고 사육장을 만들어 놓았다. 닭, 토끼, 고슴도치, 꿩을 먹이려고 아이들은 텃밭에서 나오는 배추 잎을 부지런히 주워 날랐다. 비가 오면 달팽이를 상추 잎 위에 올려놓고 행복해 했다. 아침 1교시 시작에 때맞추어 울어대는 닭 울음을 듣고 아이들은 벌써 쉬는 시간을 기다렸다. 한여름 비가 많이 오늘 날에는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물길로 숲에서부터 학교로 작은 도랑물이 들어왔다. 찰방찰방 놀기도 좋은 장마철을 선물했다. 참나무를 베어다 아이들 등걸을 만들어 주었다.

숲에서 아이들 리코더 연주소리가 들리고, 나무기둥을 얼기설기 엮어 놓은 아지트는 어느 바람 부는 날 무너져도 좋았다. 감자, 옥수수, 배추, 방울토마토를 심어 급식시간에도 나누어 먹고, 집으로도 가져갔다.

학교의 주인은 누구일까? 교육이란 무엇일까? 승진의 길이 아닌 평생 평교사의 길을 천명하고 걸어온 선생님. 이제는 체력이 달려 예전처럼 아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 숲을 만들고 가꾸어 마음에 담긴 바람은 “강원도의 모든 학교 아이들이 행복하고 민주적인 학교 문화 속에서 교사들이 수업에 온힘을 쏟는 학교가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승진의 길이 아닌 스승의 길을 걷는 교사를 우대하고 존경하는 사회문화가 하루 바삐 오길 바란다”고 말한다.

“전교조 결성 당시 교사다운 삶, 교사의 노동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해직의 길을 걸은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직의 마지막 학교가 혁신학교였고, 후배들과 지낸 시간 역시 나에게는 행운이었다”고 덧붙인다. 선생님이 보기에 학교는 꿈꾸었던 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돌아보니 온 학교에 선생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아이들이 만나는 학교 곳곳에 아이들의 행복을 심어놓은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우리 이혁종 선생님.

박정아(호반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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