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미애 시인은 언니의 1주기 기일에 즈음해 오는 26일부터 ‘갤러리 5NOTE’에서 추모 시화전을 연다. 김예진 시민기자

선우미애(55) 시인을 처음 만난 건 수년 전이었던 같다. 소양강 스카이워크 맞은편에 있는 잠시 휴업 중인 카페였다. 빈 카페에서 대학동기의 어린 시절 고향친구로서 만난 시인으로부터 시집 《봉선화 소녀》를 선물 받고 시인의 노래를 들었다. 맑은 감청색 빛 수채화물감으로 그려진 우리의 땅을 밟고 봉선화 꽃길로 걸어가는 한복 입은 소녀의 버선발에 마음이 아팠다. 선우 시인의 시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빼앗긴 소녀시절이 봉선화 꽃잎으로 물들고 있었다.

선우미애 시인은 사람들의 감성을 울리는 시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춘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다. 처음 만남에서 동해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이 먼저 각인된 시인이 언제부터 춘천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1990년 5월 결혼하고 춘천에서 살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1992년 5월, 학생 때부터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던 지인이 내게 강릉에서 행하는 ‘신사임당 주부백일장’에 춘천시 대표로 나가보라 권유했어요. 별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강릉에 가면 친정집이 있는 동해에 덤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시제가 ‘대관령’과 ‘지아비’였습니다. 춘천에서 강릉으로 내려오면서 대관령을 지나왔기에 바로 ‘대관령’을 시제로 삼아 시를 지었어요. 그때 지은 시가 장원이 되면서 동인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 한맥문학 2월호에 〈삶〉, 〈눈물 빛 같은 노을〉, 〈세 발 자전거〉가 신인상 수상작품으로 실리면서 시인으로 등단했고, 다음 해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시조 부문 〈새벽을 기다리며〉가 당선되면서 시조 작품활동도 하게 되었습니다.

선이 고운 얼굴과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시인이지만, 1992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니 춘천문단에서 활동한 지도 벌써 26년이나 된다. 시인에게 시집을 몇 권 발간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시인이 발간한 시집을 헤아려 보는 것도 앞으로 시인을 알고, 시인의 시집을 찾아 읽는 데 도움이 되리라.

내일이라도 목숨의 끈을 놓으면 한줌 허공으로 돌아갈 것 같은 삶, 위선의 옷을 벗은 자연인의 모습이고 싶어 내 속의 보이지 않는 나를 향해 부단히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가슴에 일렁이는 언어들을 모아 결을 짜 2002년 첫 시집을 묶었는데, 그 시집이 《자연을 닮은 그대는》입니다. 2008년에는 《섬 같은 사람》, 2010년 《까닭 없이 그대가 그리운 날에는》은 시낭송 CD로도 제작을 했고, 2010년 《산다는 것은》은 전자출판으로만 간행했어요. 2013년 《봉선화 소녀》라는 위안부 피해자 관련 시집을 냈습니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2015년에는 《길을 읽다》라는 여행 에세이집을 발간했습니다.

나 세상에 살면서
암석에 부딪히는 슬픈 마음
모두 잊었으면 좋겠다

저기 자작나무
숲속의 평화로움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

따스한 봄날
그리움의 잔영을 담고

꽃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는 날이
점점 더 많았으면 좋겠다
- 〈그랬으면 좋겠다〉, 《마른 꽃 편지》


몇 권의 시집과 페이스북 활동을 통해 본 시인의 시는 다분히 감성적이고, 자기의 감정에 솔직한 언어들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시인의 시가 언제나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힘든 사람들에게 ‘나도 그렇지’하며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난히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많은 시인의 시, 그렇다면 시인의 시를 이끌고 가는 정서는 어떤 것일까?

사람이 살면서 애절하고 잔잔한 그리움을 가진다는 것은 충분히 멋스럽죠. 그것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든 혹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 대상이 그 어느 것이든 사람에게 그리움의 뜰을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그리움을 간직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주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들도 많았고 감사해야 할 사람들도 많았어요. 부디 나의 척박한 시가 빛깔 곱게 독자들의 가슴에 함뿍 젖어가는 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이렇듯 시인이 쓰는 시의 바탕에는 그리움이 흐른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시집을 ‘그리움’으로 짓는 ‘집’이라고 표현한다. 그리움의 언어로 가득한 시인의 시집 속에서 색다르게 눈에 띄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아픔을 그린 네 번째 시집 《봉선화 소녀》다. ‘들꽃’, ‘바람’, ‘강’ 등 감성적인 소재로 시작을 하던 시인이 사회참여적인 시집인 《봉선화 소녀》를 발간하게 된 데에는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칠흑의 밤을 지내온 할머니들의 사연을 듣고 할머니들을 위한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모진 시련으로 하늘과 땅이 뒤집혔던 일, 무자비하게 인권을 짓밟아온 잔인무도한 저들의 행태를 듣고 나는 혼자 엎디어 펑펑 울었습니다. 시를 쓰고 네 번째 시집의 제목을 《봉선화 소녀》라고 하였어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소녀’라는 이름을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었어요. 긴 세월에 고인 할머니의 고단한 눈물을 봉선화 꽃에 곱게 담아드리고 싶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어요. 〈봉선화 소녀〉, 〈할머니〉라는 제목의 시를 가지고 행사 때마다 곳곳에 시낭송을 하러 다녔습니다.

서쪽 하늘 곱게 물들어 가면
봉선화 꽃의 가슴 열어놓고
나직한 희망 하나도 없이
흰 머리카락 설움이 녹아드는
애달픈 소녀야
봄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봄인데
하, 봄은 다시 오려나
하, 봄은 다시 오려나
- 〈봉선화 소녀 1 - 위안부 할머니〉, 《봉선화 소녀》


서울시청을 비롯해 성남시청과 정선 행사장까지 가서 그림 전시와 시화전을 하며 시낭송을 했어요. 글을 쓰는 문인들이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선화 소녀〉는 일어, 중국어, 영어로 번역이 돼 시집 《봉선화 소녀》에 실려 있습니다. 세계인들이 함께 알고 공감하고 제대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시화전과 시낭송을 하며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할머니들은 옛날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지금도 그날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증언하시곤 하시지요.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웠으면 하는 마음에 자꾸만 아립니다.

시를 쓰고 시집을 묶고 또 시낭송을 하러 다니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온 시인의 시가 요즈음 들어서 변화가 있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언뜻언뜻 보이는 깊은 슬픔과 힘들게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느낌은 다만 나만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얼굴도 다소 여위어 보이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힘들게 말을 낸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는 시인의 몸짓이 힘들다.

작년에 언니가 돌아가셨어요. 예술적 재능도 많고 손재주도 많은 언니였지요. 두 살 터울인 언니는 유달리 몸이 약했던 나에게 언제나 방패막이 같은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소중했던 사람이라 언니를 잃은 가족과 친구들이 언니의 부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강했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때론 그리움으로, 때론 남은 자의 죄책감으로 ‘몸이 약했던 나를 대신해서 떠난 것은 아닌지…’ 눈물만 흐르던 날이 많았지요. 언니를 잃은 상처에서 벗어나려 무던히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못 보내고 있습니다.

선우미애 시인은 이달 하순 언니를 그리며 쓴 시를 모아 《마른 꽃 편지》라는 새 시집을 발간한다. 동시에 언니의 1주기 기일에 즈음해 ‘갤러리 5NOTE’에서 추모 시화전을 연다. 오는 26일부터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일주일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어쩌면 단순한 추모 시화전이라기 보다 사랑하던 언니를 마음속에서 온전히 보내주는 의식일 것이다. 평소 언니가 놓았던 수와 언니가 그린 그림, 언니가 좋아하던 시와 언니를 그리며 지은 시를 중심으로 시화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언니의 가족과 친구들도 초대해 함께 언니를 한없이 그리워할 생각이다. 시집발간과 추모 전시회가 성황을 이루어 시인의 아픈 마음을 달래고 절절한 그리움이 더 좋은 시로 승화되기를 기원해 본다.

원미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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