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소식이면 매년, 나는…그리고 기차는 터널을 통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으로 들어간다.

“창밖은 어둠이 내리깔리고 있어 기차 안은 불이 켜져 있다. 그래서 유리창이 거울이 된 것이다…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흐르고 있어, 이를테면 비치는 것과 비쳐지는 거울이 영화의 이중 촬영처럼 움직이고 있었다…기차 안은 그리 밝지도 않고 거울처럼 또렷하지도 않았다. 반사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시마무라는 들여다보는 동안에 어느새 거울인 것을 잊어버리고 마치 저녁 풍경의 흐름 속에 처녀가 둥실 떠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럴 즈음, 처녀 얼굴에 불이 켜진 것이다.”《설국》

그리고 기차는 터널을 통해 ‘설국’을 빠져나온다.

“접경의 산을 북으로 올라가다 긴 터널을 빠져나가면서 겨울 오후의 희미한 광선은 그 땅 밑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낡은 기차는 밝은 껍질을 터널 속에 벗어 버린 듯, 벌써 산과 산이 겹쳐진 사이로 황혼 빛이 퍼진 산골짜기를 서서히 내려갔다. 이쪽에는 아직 눈은 없었다.”《설국》

눈의 나라 니카타 현에 있는 한 온천에서 시마무라와 고마코, 그리고 요코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과 감정의 교차를 기본구조로 하는 소설 《설국》은 아름다운 문장과 풍경이 가득한 작품인데, 눈의 나라로 들어가는 소설의 처음 ‘기차 안 풍경’, 그리고 눈의 나라를 빠져나오는 어느 날 ‘황혼녘의 풍경’이 대표적이다.

밤차, 밤기차나 밤 버스를 타고 유리창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밖의 어두움과 안의 불빛으로 차의 유리창이 거울이 되는 것을. 거울이 된 유리창에는 차 안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밤 버스 통학 경험이 있는 내가 《설국》하면,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면 바로 눈의 고장, 즉 설국이었다”로 시작하는, 누구나가 떠올리는 첫 문단보다 ‘거울로 바뀐 유리창’에 관한 이 문단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거울로 바뀐 유리창에 비친 차 안의 모습은 마치 창문 밖, 어두움 속을 흐르는 풍경 같다. 차를 따라 흐르는 그 풍경의 속도감은 눈으로 직접 보는 풍경에서는 맛볼 수 없다.

밤차들이 달리는 어둠 속에는 불빛이 나타난다. 거울이 아닌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이 불빛은 거울이 된 유리창에 비치는 차 안의 풍경과 만난다. 거울 속의 빈 공간을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거울 속의 물체와 겹치기도 한다. 이 대목의 압권은 “처녀의 눈과 불빛이 겹치는 순간”이다. “그녀의 눈동자는 요염하고도 아름다운 야광충이었다.”

설국을 벗어난 기차 안 승객들의 모습도 “유리에 반쯤 투명하게” 비친다. 쉰이 넘은 듯한 남자와 얼굴이 붉은 처녀가 마주 앉아 내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시마무라는 이들이 함께 긴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이리라 짐작하지만 나이 든 남자는 다음 역에서 내린다. “그럼 인연 있으면 또 만나자고.” 남자가 처녀에게 남긴 말이다.

눈의 나라 ‘밖’의 이 장면은 눈의 나라 ‘안’에서 이뤄진 사람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눈의 나라의 등장인물들은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뗄 수 없는 어떤 관계들’에 얽혀있는 듯하다. 그러나 눈의 나라를 벗어난 기차 안에 있던 나이든 남자와 처녀 사이는 동행이 아니라 그냥 맞은편 자리에 앉은 ‘우연한 관계’였다. 눈의 나라 ‘안’과 눈의 나라 ‘밖’의 상반되는 이 관계들 사이에서, 나는 눈의 나라의 이 ‘뗄 수 없는 어떤 관계들’은 감각의 세계의 일이고, 눈의 나라 밖의 ‘우연한 관계들’은 이미 관념화 된 사실의 세계의 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정승옥 (강원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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