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판매되는 씨앗을 구입해서 심은 작물에서 다시 씨앗을 받아 심었을 때 열매가 거의 안 달리거나 쭉정이만 나온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멘델의 법칙을 살펴보면, 개량한 이후 잡종 2세대에서는 1:2:1의 비율로 양쪽 부모의 우성만 받은 것과 서로 섞인 것, 그리고 양쪽으로부터 열성만 받은 열매로 나오게 된다. 이렇게 개량된 씨앗도 세대를 거듭하며 다년간 계속 심어서 유전적으로 안정된 씨앗을 얻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년 농사로 먹고 살아야 하는 농부들에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개량종자를 종자회사에서 계속 살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조차 개량종자를 살 필요는 없다. 토종씨앗의 가장 큰 장점은 씨앗을 계속 받아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작물에서 씨앗을 받는 방법은 그리 어렵거나 복잡한 일이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의지와 정성이 필요할 뿐이다. 이제 두 번에 걸쳐 텃밭에서 재배하는 주요 작물에서 씨앗을 받는 방법을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작물은 자가수분을 하는 작물과 타가수분을 하는 작물로 나뉜다. 자가수분이란 같은 꽃에 암술과 수술이 있어 꽃가루받이가 일어나는 것이고, 타가수분은 다른 꽃에서 꽃가루를 얻는다. 물론 ‘제비’속이나 ‘닭의장풀’속처럼 두 가지 방식을 같이 사용하는 식물도 있다.

자가수분의 대표주자는 벼과(벼·보리·옥수수·밀 등), 가지과(고추·가지·감자·토마토 등), 콩과 등이다. 자가수분의 가장 큰 전략은 같은 형질이 대를 이어 이어지기 때문에 같은 환경에서에서 넓게 번식할 수 있다. 때문에 고산지대나 혹독한 환경에서 훨씬 유리하다. 자가수분을 하는 작물의 유전적 변이율은 1% 미만이다. 그래도 자가수분을 하는 벼는 그 종류도 엄청날 만큼 다양한데, 그 이유는 자연적 변이를 인위적으로 유지시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가수분을 하는 벼가 그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 전부터 인간에 의해 육종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식물은 타가수분이라는 전략을 택한다. 이유는 종의 다양성 때문이다. 같은 형질로는 같은 환경 조건에서 살 수밖에 없다. 만일 환경이 급속히 바뀌면 생존에 크게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다른 유전형질을 외부의 꽃으로부터 받아들여 다양한 환경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형질을 가진 후손을 생산하는 것이다.

타가수분이라는 말은 누군가가 꽃가루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 전달자는 크게 바람과 곤충 등의 동물이다. 보통 실내에서 재배하는 작물들은 곤충이 없어 열매를 맺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고추나 토마토처럼 자가수분을 할 수도 있고 타가수분 작물의 경우 바람으로도 수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람조차도 불지 않는 곳에 타가수분 작물을 심었다면 조심스레 붓 한 자루를 들고 꽃가루를 서로 교차해 묻혀주면 된다. 그 말은 씨앗을 받아서 심겠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내가 기르는 작물이 타가수분을 하는지 자가수분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일반적으로 채종을 위해 재배하는 밭에는 거름을 내지 않거나 아주 작은 양만 밑거름으로 준다. 땅에 양분이 많아지면 작물은 특성상 씨앗보다는 잎이나 줄기를 더 크게 키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에 사는 잡초를 보면 줄기나 잎이 형편없이 작은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씨앗을 맺는 일은 다른 식물에 못지않다. 환경이 힘들수록 자신이 가진 온 힘을 다해 씨앗을 맺으려 하는 것이다. 땅이 척박하면 씨앗의 양은 적어지지만 원래 형질의 건강한 씨앗을 얻을 수 있다.
 

김태민 (춘천토종씨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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