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롯해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11월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하는 달로 느낀다. 특히 진학을 앞둔 학생들과 가족들에게는 향후 진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선발 시험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달이어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달이 아닐까 싶다. 조금 전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16일 예정됐던 수능이 연기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곳 벨기에에서 시행되는 시험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벨기에 교육 시스템은 만 30개월부터 입학신청을 할 수 있다. 유치원 3년-초등과정 6년-중등과정 6년의 과정으로 보통의 경우에는 만 18세에 졸업한다. 벨기에는 1914년부터 아이들의 의무교육을 법규화해 1983년부터 초등 및 중등교육 즉 만 6세부터 만 18세까지 의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매년 9월 1일 학기가 시작되어 6월 30일이면 끝이 난다.

학기 중에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교육내용과 관련한 것들, 예를 들면 읽고 쓰기, 계산, 외워야 할 것들은 매주 테스트를 통해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평가하고, 12월과 6월에는 중간·기말 고사도 진행한다. 수시 테스트를 포함한 모든 교내시험은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소홀히 하면 좋은 성적표를 받기는 쉽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브뤼셀 - 왈룬 정부에서는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진학 자격증명 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중학교 입학 시험제도가 사라졌지만, 벨기에에서는 중학교에 입학할 수준이 되는지를 평가하는 초등교육과정 이수 증명서인 CEB를 취득해야 중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 이러한 자격증서제도는 중학교 2학년 때 CE1D와 중학교 6학년(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 때 CESS 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러한 시험에서는 50점을 기준으로 각 과목별 50점이 넘으면 교육이수자격 증서를 부여 받고 다음 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으나, 만일 50점이 되지 못할 때에는 낙제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재수·삼수를 하지만, 이곳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 반에 1~2명 가량의 낙제생이 있기도 한다. 학년 진급 또는 진학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교육이수능력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는 나라다.

이외에도 교내 성적과 자격증서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전국 모의고사와 비슷한 형태의 시험을 추가적으로 실시(초3, 초5, 중4)하고,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두 번 하는 경우도 있어 벨기에 자국민들에게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단순히 여기까지만 본다면 한국보다 더 많은 시험에 스트레스도 더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것은 이러한 시험에서 고득점을 요하거나 점수로 인해 아이들이 평가 받고 차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 후에는 경쟁심을 부추기는 순위나 점수는 따로 공개하지 않으며,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낙제하지 않을 정도는 해야 하고 그 평가 또한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의 능력을 평가하는 수준 정도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이러한 진학 자격증명 평가제에 합격하면 별도의 입학시험 없이 상급학교로 진할할 수 있다. 중등학교로 진학할 때 학교에 선발계획 인원보다 지원 신청자가 더 많을 때에는 교내 관련 규정에 따라 우선 선발권을 주기도 하지만 점수가 중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학교에 다니고 있는 가족 유무나 학교 인접 거주권 등을 고려해 우선 선발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했던 CESS(고등교육)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본인이 원하는 어떤 대학이라도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의대나 엔지니어 학과 등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점수에 상관없이 입학할 수 있으나 매 학년마다 낙제제도가 있기 때문에 대학공부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례로 낙제위기에 처한 어떤 대학생이 대학원생이나 교수 등에게 과외를 받을 정도라고 하니 상상이 된다. 학생들은 많은 시험을 보지만, 서로 경쟁을 유발하거나 기회를 박탈당하지는 않는다.

조화연 (주부·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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