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차 인생, 다심원 이경숙 원장

30년 동안 차 공부를 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다심원 이경숙 원장.

동내면 거두리 효장례식장에서 학곡리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다심원’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오른쪽 숲으로 접어들어 살짝 들어가면 아담한 마당에 햇살 가득한 오래된 이층집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심원(茶心園)은 전통차를 마시며 다례(茶禮)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배움터이자 찻집이다. 마당 곳곳에는 들꽃들과 정성들여 보살핀 나무들이 있고, 다실 내부에도 직접 장식한 꽃꽂이와 앙증맞은 수초, 구석구석 소담스런 화초들이 다심원 주인의 성품을 말해준다.


2층 다실로 안내를 받았다. 화로에서 찻물이 보글보글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다실의 따사롭고 정갈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받아들고 차향을 음미하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내 기분 좋은 나른함과 편안함이 몸과 마음에 휴식을 준다.

다심원 이경숙(64) 원장은 결혼하기 전까지 영월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을 떠나 남편과 새 둥지를 틀고 남매를 낳았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사찰 스님으로부터 대접받은 차 한 잔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때 스님이 차를 내어주시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만 홀딱 반했어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 차 공부를 시작해 30년째 공부 중이다. 뭐든 자신과 통하는 것은 한눈에 알아보는 법인가 보다. 차를 연구하며 20년쯤 살았을 무렵 귀곡산장 같은 숲속의 헌집을 보고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남편 몰래 계약까지 하고 그 사실을 숨긴 채 다실 운영을 잘 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남편을 설득했다. 집을 직접 리모델링하고 주변을 가꾸어 2008년에 다심원을 열었다.

 

차를 공부하며 보낸 30년 세월을 보내다

다심원 문을 연 지 어느덧 10여년.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는 1층 다실에서 다례수업을 하고 대개 오후에 차 손님을 받는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저녁 6시까지 운영하지만 해가 길 때는 7시까지 문을 연다. 한 달에 두어 번은 특별한 다회(茶會)를 갖는데,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예약제로 운영된다. 간단한 식사를 곁들여 향과 차를 품는 이른바 ‘품향다사’. 차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다회에 참여하는 인원은 보통 6명으로 제한한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물을 끓이고 차를 내리고 차를 마시는 동안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오감을 활짝 열고 섬세하게 마음을 느끼고 관찰하며 명상에 잠긴다.

그간 다심원에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과 그들과 더불어 차와 인생을 나눈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묶어 2015년 《품향다사》를 출간했다. ‘다심원의 차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어려운 전문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시면서 나누고 느낀 마음의 평온함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차는 일상이 돼야 해요. 야외를 나갈 때도 거름망 하나만 있으면 간편하게 차를 즐길 수 있어요.”

이경숙 원장은 거름망에 메밀꽃차를 올려놓고 뜨거운 찻물을 천천히 부어 우려내면서 시범을 보여줬다. 메밀꽃와 계수나무꽃을 블랜딩해서 마시는 꽃차는 구수하고 은근한 향이 좋았다. 직접 덖고 발효시킨 황차와 좀 오래 덖은 녹차도 맛을 보는 동안 차의 종류와 차 마시는 법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차는 차나무에서 잎을 따서 생산한다. 차는 크게 백차, 황차, 청차, 녹차, 홍차, 흑차 등 여섯 가지로 나뉘는데, 차의 맛은 차나무의 종류, 잎의 크기, 발효의 유무, 보관 장소, 제조 시기와 방법, 숙성년도, 다구, 물 등에 따라 모두 다르다.

체질에 따라 냉한 사람에게는 발효차가 좋고,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생차가 좋으니 자신에게 맞는 차를 찾아 마시는 것이 중요하겠다. 평생을 마셔도 모든 차를 마셔 볼 수는 없지만 많이 마셔봐야 좋은 차를 알아볼 수 있고 자신에게 맞는 차를 찾게 된다.

옛 선인의 말씀에 ‘차를 많이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많이 마시면 망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차를 대하면서 마음은 경건해지고, 표정은 온화해지고, 나누는 이야기마다 덕담이라 사람이 저절로 함께 즐거워하니 과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차는 색(色), 향(香), 미(味)가 잘 어우러져야 하지만 나라마다 문화가 조금식 다르다. 일본은 다도(茶道)라 하여 주인과 손님 모두가 대등하게 서로 존경하며 깨끗한 마음으로 정숙한 가운데 예의를 지키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반면에 중국에는 차를 즐기는 차관(茶館)이 많다. 중국인에게 차관은 일상의 공간이자 문화의 공간이다. 차를 즐기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지만, 손동작이 화려하고 기예에 가까운 차 예술이 발달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다예(茶藝)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다례(茶禮)는 맛을 중요시한다. 차를 우리고 마시는 방법에도 예절이 있는데, 그 동작들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한 품위가 있다.

어느 문화가 더 우월하다기보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풍토에서 발전된 것이니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에 익숙하게 녹아 있기에 당연히 우리 것이 익숙하고 좋다.


“그저 차를 즐기는 차인이 많아지길 바라요”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안 우리의 온도도 올라갔다. 맑고 구수한 녹차에 아카시 꽃이 띄워졌다. 금세 지난 5월에 걸었던 아카시 숲길의 향긋한 꽃내음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차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이 원장은 좋은 차를 찾아 전국으로, 또는 해외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차를 맛보기도 하고 직접 차를 만드는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다심원 운영으로는 돈을 못 벌어요. 그래도 적자는 아니니 용돈이 생기면 차를 구입하러 길을 떠납니다. 다행히 남편에게 안정적인 수입이 있으니 행복하게 즐기고 있어요.”

좋아서 하는 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스스로도 열정적이지만 만나는 사람도 그 좋은 에너지를 받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이 원장의 부드럽고 편안한 말씨와 익숙하고도 절제된 몸짓은 처음 만난 사람들도 무장해제를 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다심원을 10년간 운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육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우리 차 문화를 접하고 신기해하며 좋아할 때는 그 기쁨이 갑절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차를 따르고 차담을 나누며 배운 예절을 실천하는 모습을 볼 때면 새삼 보람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을 물었다. “그저 차를 즐기는 차인이 많아지길 바라요”라는 소박한 대답과 함께 피어나는 여유 있는 미소가 긴 여운을 준다.

다심원을 나서며 식사를 마친 후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해진다.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고요히 자신의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이런 찻집이 많아졌으면 싶다.

김예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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