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깊은 고민을 상담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인간이란 각각의 관계성 속에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관계성 속에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료해야 하는 것은 개개의 인간이 아니라 관계성이다.”-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씀, 박동섭 옮김, 서현사, 2010)

며칠 전부터 3학년 아이들이 여러 번 “선생님, 우리 반 서클 시간에 와주세요. 체육시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요.” 아이들 담임선생님에게 여쭌 다음 수업이 비는 시간을 내어 초대에 응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일환으로 매주 진행되는 ‘Circle’ 시간이었다.

스무 명의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이 둥글게 마주 앉았다. 원 가운데는 작은 촛불을 밝혀 두었다. 작은 마이크 모형을 쥔 아이부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차례차례 한 주 동안 불편했던 일, 사과 받고 싶은 일, 우리가 고쳐야 할 일, 격려하고 싶은 일 등을 돌아가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과할 일은 사과한다. 그 다음이 또 중요한데,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아 문제의 원인이 되는 아이들의 대화 중 기억나는 것 몇 개를 소개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서클. 
사진=호반초 3-2반 임지은 담임교사

개인의 욕망을 조절하는 힘은 권위에 위탁되지 않는다!
a: 내가 체육 시간에 카드 벤치에 올려놓았는데, 카드 가져간 사람 내일까지 내 사물함에 넣어줘.
b: 카드는 ○○이가 가장 아끼는 건데 가져간 사람 반성해라.
c: ○○이 카드를 누가 훔쳐 갔다고 단정 짓지 말아야지.
a: 그래. ○○이 카드 잘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니까 꼭 찾았으면 좋겠다.
d: 근데 ○○, 너는 왜 그 카드를 학교에 가져와서 다른 친구들 맘이 흔들리게 했니. 그것도 체육시간에.
a: 엄마가 못 갖고 놀게 하거든. 그래서 학교에서라도 갖고 놀고 싶어서 그랬어.
b: 너 그 카드 때문에 발야구 연습 안 해서 속상했어.
a: 카드에 정신 팔려 우리 팀 연습시간에 못한 건 사과할게.

규칙은 교사 혼자 정하는 것이 아니다.
△△: 체육 선생님, 체육시간에 무섭게 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들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시고, 화내지 마세요.
나: 응 그랬구나, 내가 화내서 분위기 나빠졌구나. 미안해. 용서해주렴. 그리고 너희들도 경기 규칙 설명할 때 잘 들어주면 좋겠다.
○○: 선생님, 경기규칙도 선생님 혼자 정하지 마시고 함께 정하면 안 돼요?
△△: 그리고 선생님, 제가 체육하기 싫어서 안 한 게 아니라 손가락이 공에 부딪혀 아파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이유도 묻지 않고 야단쳐서 몰래 울었어요.
나: 그래, 선생님 생각이 부족했구나. 점점 그렇게 하도록 하자. 규칙 함께 만드는 것 제안해주어서 고맙다. ○○아, 그리고 △△아, 정말 미안하다. 근데 쉬고 싶을 때 ‘타임아웃‘신청하는 약속을 다시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말해주어서 고마워.
□□: 그래도 재미있는 거 많이 가르쳐 주셔서 체육시간이 제일 기다려져요. 고맙습니다.

3학년 교실에서 진행되는 서클 모임에 다녀 온 후 기분이 참 좋았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인가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긴장했고, 고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한 동등한 존재로 최대한 경청했고, 아이들이 말하는 언어로 들려지지 않는 말까지 이해하려는 시간이었다. 적어도 서클 시간에 함께 한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고, 학교의 구조 중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반 아이들 모두에게 하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처벌을 중심으로 하는 학교폭력 대응보다는 인권의 눈으로 학교문화에 대한 일상적인 성찰의 중요함을 3학년 열 살 인생들이 나눈 이야기에서 발견한다. 다양한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학교의 문화를 바꾸어 가는 것이 학교폭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박정아 (호반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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