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문독서감상문 수상자들, 저자와 만나다

《춘천사람들》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인문독서감상문’의 수상자 다섯 명의 청소년과 저자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저자인 현직 영어교사 이충호 씨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고 우리나라의 국가와 시민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며 《시민의 품격, 국가의 품격》을 썼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촛불혁명을 겪으면서 지도자의 자질과 시민의 의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관심을 끌던 책이었다.

지난 6일, 《춘천사람들》 창간 2주년 기념잔치에서 진행된 시상식을 두 시간 앞두고 세종호텔 커피숍에서 이충호 작가와 박채린(최우수상·봉의고 1), 최유빈(우수상·남춘천여중 3), 그리고 장려상을 수상한 박운상(성수고 2), 이나영(춘천여고 2), 정민수(봉의고 1)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직접 저자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한참 꿈을 키우고 꿈의 실현을 위해 애쓰는 친구들에게 꿈은 무엇일까? 꿈에 대해 학생들은 ‘이상을 실현하는 것’, ‘자기가 되고 싶은 것’ 등 저마다 달리 표현했다. 사학과 교수가 되고 싶다는 채린이,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는 유빈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운상이…. 이 작가는 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대화의 문을 열었다.

“몸이 편안한 걸 좇으면 게으름이지만 마음이 편안한 걸 좇으면 꿈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의 반대도 전혀 아픔으로 느끼지 않는 어떤 순간이 옵니다. 바로 그때가 자신의 꿈을  따라가고, 때론 꿈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 꿈이라고 주입시켜 놓은 것을 좇으면 그 끝에서 반드시  좌절과 절망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 자신 외에 그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결정은 대개 깜깜한 밤에 찾아오죠. 마치 황혼이 내린 걸 확인하고 날개를 펼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영문학, 슬라브어문학, 경제학 등 많은 학문을 전공하고도 50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꿈은 이미 실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어떻게 이런 책을 쓰고, 책을 쓰기 위해 《플루타르코스영웅전》은 또 얼마나 많이 읽었을 까? 역사학도를 꿈꾸는 채린이가 물었다.

"고전을 체계적으로 읽어볼 생각에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읽었어요. 읽는 사이 머리도 식힐 겸해서 서양의 무협지 정도로 생각하던 《플루타르코스영웅전》을 읽게 됐죠. 한 번 책을 읽고 나면 다음에 읽는 책 때문에 앞에 읽은 책에 대한 생각이 거의 지워지는데, 이 책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머리에 빙빙 돌며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는 거예요. 인상적인 대목을 골라보니 40여 군데였어요. 문득 이 책을 소재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검색해 보니 나와 있는 책도 없었어요. 한 달 보름 만에 450페이지 정도, 원고지로 1천500매 정도를 썼습니다. 영감이란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영감이란 어느 순간 머릿속에 스치다가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머물지는 않죠. 그 순간을 잘 포착하면 생각지도 않은 인생의 길에 접어들기도 합니다. 그게 마음이 편한 길, 곧 내 꿈의 길인 거지요.”

작지만 논리적이고 분명한 목소리로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시가 나오는데요. 참 특이한 구성이라고 생각했고, 그 시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구성을 하게 되었는지요?”라며 운상이가 질문을 이어갔다.

“시를 좋아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순간적인 장면을 포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화가라면, 순간적인 생각을 포착해 글로 표현하는 것이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좋아해서 시 읽기 모임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에 어울리는 시가 떠오를 만큼 많은 시를 알고 있어요. 이 책을 쓰면서 내용이 다소 딱딱하니까 순화시키는 면에서 글의 주제와 관련된 시를 넣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의외로 독자들이 좋아하고 글과 잘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판매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전략적으로 성공한 거죠.”

민수는 예전에 《플루타르코스영웅전》을 읽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처음에 나오는 테세우스 이야기를 읽다가 집안내력만 10여 쪽 이어져 너무 재미가 없었다며, “어떻게 이런 책을 읽고 그렇게 흥미 있는 영감을 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고전이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죠. 약초도 어느 사람에게는 약이 되지만 어느 사람에게는 독이 되기도 하거든요. 양서라는 것이 어른들의 입장에서 딱지를 붙여놓은 것이 많아요. 나도 20대 청년기에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음에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덮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다시 읽으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지금도 동양고전이나 한국고전에는 흥미를 못 느껴요. 독서도 다 개인취향이 존중돼야 해요.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아 읽고, 자기만의 양서목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일한 중학생인 유빈이는 의외였다. “사실 이번 책을 끝까지 다 못 읽었어요. 모르는 어휘들이 너무 많아 사전을 찾아가며 읽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사실 주제로 삼은 부분만 반복적으로 읽어서 죄송하기도 하고 질문할 말이 없어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중학생다운 통통 튀는 질문에 모두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굉장히 경제적이네요. 나도 사실 50명의 영웅 중 25명만 집중적으로 다루었어요. 나머지 영웅은 감흥이 없었던 거죠. 유빈이가 꿈꾸는 프로파일러란 직업도 모든 범죄를 다 다룰 수는 없을 겁니다. 관심이 가는 범죄유형이 있겠죠. 인문학 정신이라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독서도 자기 취향을 신뢰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취향이 맞지 않는다고 자기 취향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죠.”

학교에서 졸업앨범을 촬영하고 뒤늦게 도착한 나영이는 파란 글씨로 인쇄 된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책을 읽게 됐다고 말했다. 파란 글씨란 음악이나 영화, 시에 대한 인용문인데, 이 책에 담긴 시나 영화, 음악 이야기가 많은 독자를 감동시킨 모양이다. 독서를 통해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이라는 꿈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친구였다.
 

“상업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나도 책 쓰기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어요. 나름 잘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시, 음악, 영화 이야기를 많이 담고 싶었죠. 나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란 말을 좋아해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독자들을 흔쾌히 기분 좋고 편하게 서양고전을 담은 책의 세계로 이끌고 싶었어요. 시나 영화, 음악을 통해서요.”

작가에게 다음 책은 어떤 책일까? 알랭 드 보통이나 기욤 뮈소의 책을 읽고있다는 작가가 생각하는 다음 책은 의외로 연애소설이었다. 서양고전을 현실과 연결시켜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가가 쓰는 연애소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인생을 돌아보고 인용할 만한 짧은 영어문장을 선별해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해외사업부에 근무하는 딸과의 공동작업을 꿈꾸고 있다고 하니 그 또한 기대가 된다.

“살아간다는 일은 어찌 보면 두려움과 대면하고 대응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이 두려움은 대체로 실체라기보다는 생각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라면서 작가는 자신의 꿈을 좇는 과정에서 겪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청소년들과의 대화는 모두에게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포장하지 않은 솔직한 언어들은 작가조차 무장해제를 시키고 솔직한 답변으로 이끌었다. 어쩌면 이 청소년들이야말로 《춘천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고, 《춘천사람들》의 정신을 계승해 갈 세대들일 것이다.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이런 행사를 통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원미경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