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2018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났다. 걱정과 우려 속에 무사히 고등학교 마지막 시험을 끝낸 그 시점부터 수능을 향한 주자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로 바뀌었다. 이제 고3 학생들은 언제 학교에 나타났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돌아가고, 고2 학생들은 매 수업시간마다 “너희는 이제 고3이야, 알지?”라는 말을 듣게 된다. 고3, 고3. 학원 전단지에도, 부모님의 말씀에도, 학교의 수업에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 돼버렸다. 심지어 이제는 ‘고3’이 고유명사가 돼버린 느낌이다.

우리는 고3이라는 이름을 대면 안쓰러운 표정들과 함께 온갖 걱정들을 받는다. 이름만 두고 비교해 보면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에 비해 고3은 엄청난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그 사이에는 1년이라는 시간과 수능이라는 시험의 유무만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고3에서 특히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수능시험과 사회로의 진출이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고3들이, 고3이 될 모든 학생들이 짊어져야 하는 짐은 무겁기만 하다. 물론 성인이 되어 책임을 지고 사회로 향하는 것은 틀림없이 무거운 짐이지만 나에게는 특히나 그 짐이 고3 때 집중되는 듯 보였다. 건네주는 것만 받으면서 11년을 보내고 마지막 1년에서 미처 준비되지 않은 미래로 등이 떠밀리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새 1년이 지나고 수능이 끝나면 온 사회가 고3들을 축하해 주는 듯 그 모진 시간을 잘 견뎌왔다는 격려를 보낸다. 나는 이 광경을 매년 봐오면서 그 순간을 동경하면서도 점점 고3이 가까워지자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다. 쉬지 않고 사회의 요구에 따라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냈던 학생들에게 보내는 이 반응들은 진심일까.

누구나 고3을 보면 안쓰러워한다. 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가? 정말 학생들을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원인을 먼저 나서서 해결하고자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극심한 경쟁의 연속성 안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의례적인 말 한마디, 무조건 반사 같은 연민만을 건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고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의 차별, 무한경쟁의 상처들을 안쓰러움이라는 감정 하나만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연민 가득한 위로나 수고했다는 격려보다 고통의 고리를 끊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 절실하다. 고3이 되는 것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고통’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매듭짓는 것이 되길 바란다.

조하은 (성수여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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