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반란(反亂)을 도모하는 일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춘천워커즈협동조합

2017년을 나흘 앞둔 지난달 28일 오전, 부랴부랴 거두리에 있는 커뮤니티 카페 쿱박스로 향했다. 춘천워커즈협동조합 조합원들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에 창립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건 뭐지?’하는 궁금증이 일었던 터였다. ‘모두 워커를 신고 다니나?’하는 우스갯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대체 워커즈협동조합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지난달 28일 거두리 커뮤니티 카페 ‘쿱박스’에서 춘천워커즈협동조합 조합원들을 만나 워커즈협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김선옥·최주영·황경자(이사장)·남궁순금 조합원. 김예진 시민기자

쿱박스에 들어서니 네 명의 조합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합원은 모두 여덟 명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31일 각자 100~200만원씩을 출자해 자본금 1천만원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물었다.

[김선옥] 1년 정도의 과정이 있었어요. 춘천여성민우회와 춘천두레생협의 나이가 좀 지긋한 여성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에 대한 공부모임을 하게 됐어요. 모임을 진행하면서 ‘일자리도 만들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10월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마을기업 설립 전 교육’을 받게 되면서 협동조합 설립이 급물살을 타게 됐죠. 처음에는 9명이 함께 했는데 2명이 빠지고 다른 한 분이 합류해 8명으로 창립했어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름이 낯설다. ‘워커즈(Workers)’라면 ‘일하는 사람들’인데, 그리 단순하게 해석할 순 없을 것 같다.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걸까?

[김선옥] 원래는 워커즈 컬렉티브(Workers Collective)라고 합니다. ‘노동 공동체’, 또는 ‘일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 시작돼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 활발하게 진행이 됐어요. 스스로 출자하고 노동하고 경영도 하는 형태죠.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협동조합에 대한 법률이 따로 없습니다.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제도적인 부분에서는 우리나라의 ‘협동조합기본법’을 부러워하기도 하죠.

워커즈 컬렉티브 네트워크 재팬(WNJ)의 후지키 치구사(藤木千草) 대표에 따르면, ‘사회적기업’, 또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불리는 ‘워커즈 컬렉티브’는 일본이 본산지나 다름없다. 구미의 방식을 받아들여 시작했지만 20년 이상 축적된 경험을 통해 시민사업의 한 모델로 정착이 돼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워커즈 컬렉티브는 협동조합의 정신을 기반으로 고용되지 않고 멤버 전원이 출자해 대등한 입장에서 자주적으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면서 일하는 방식이다. 멤버 전원이 경영자나 마찬가지다.

1982년에 워커즈 컬렉티브 ‘닌진’이 카나가와에서 탄생해 ‘데포’라고 불리우는 생활클럽생협의 거점으로서 생협업무 하청, 도시락 제조판매 등을 시작한 것이 제1호다. 그 후 동경, 치바, 사이타마에서도 속속 설립돼 생활클럽생협뿐만 아니라 다른 생협도 워커즈 컬렉티브의 설립을 추진하면서 일본 전역에 확산됐다. 업종도 생협의 위탁사업에 그치지 않고 식(食), 복지, 환경, 정보 등 일상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체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워커즈 컬렉티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약 600여 단체가 있고, 1만7천명 이상의 멤버가 소속되어 있으며, 총사업고는 약 136억엔이다. 


아무리 뜻이 좋더라도 함께 뜻을 모으고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공통의 지향을 가진다고 해도 각자 참여하게 된 동기나 이유 또한 조금씩 다를 것이다.

[최주영] 한 2년 정도 놀면서 뭘 하면 좋을까 궁리를 많이 했죠. 그 사이 틈틈이 반찬을 만들어 지인들과 나눠 먹고 그랬는데, 주변에서 ‘네가 반찬을 만들면 사먹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반찬가게를 준비하고 있다가 워커즈협동조합 얘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사실 돈을 벌려고 하면 혼자 해도 되는데, 이제는 나만 생각할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역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남궁순금] 생협을 이용하면서도 생협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어요. 함께 공부하면 좋겠다고 해서 합류했는데,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왔네요. 뭔가 나누며 재미있게 나이 먹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젊은 시절 시민운동을 하면서 내 자신이 몸도 마음도 많이 소모된 느낌이라 이제 나를 채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황경자] 혼자 늙어가기 싫어서라고 할까요? 그런 것 같아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부대끼며 함께 늙어가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죠.

행정안전부에서 공모하는 마을기업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선정이 되면 2년 동안 얼마간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실적이 필요해 몇 가지 시범사업을 했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반찬사업이었다. 춘천두레생협에서 진행한 에코파티에 잡채와 고들빼기, 고추부각 등 반찬 3종 세트를 납품하고, 11월에는 오징어볶음과 장조림 세트를 한정 판매했다. 계절반찬으로 알타리김치도 담가 팔았다. 생협 로컬밥상 꾸러미에는 코다리조림을 납품하기도 했다. 압권은 김치만두였다. 친환경 유기농 재료로 만든다고 하자 주문이 폭주했다. 삽시간에 5천개의 주문이 들어왔다. 만두를 빚어내느라 다들 정신이 혼미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손발이 잘 맞지 않아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을 법도 했다.

[최주영] 도시락 주문이 들어왔을 때 100개를 주문했는데 뚜껑이 모자란 거예요. 노안들이 오셔서 두 장인지 세 장인지 모르고 덮은 거죠. 리본까지 다 맸다가 풀어서 다시 포장을 했죠. 만두는 생협밴드로 주문을 받았는데, 댓글이 많아지면 앞의 페이지가 접히는 걸 모르고 뒷부분만 확인을 해서 29세트나 주문을 확인하지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취소하는 해프닝도 있었어요.

행정안전부에서 공모하는 마을기업에 선정이 되려면 춘천시와 강원도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시에서 선정하는 두 팀에 뽑혔다. 도에는 14팀이 올라왔다. 도에서는 이 중 9팀을 선정해 행안부에 올린다. 이것도 무난히 통과했다. 이달 중순이면 결정이 나는데, 선정되면 2월 중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선정이 되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고 싶을까?

[김선옥] 우선 반찬사업을 위한 조리시설이 필요해요. 사무실도 필요하고. 좀 더 공간이 여유가 있으면 교육실을 갖춰 조합원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려고 해요.

첫 사업은 반찬사업이지만 올해 사업으로는 배송사업과 강사사업까지 계획에 포함돼 있다. 독자적인 인력풀을 갖춰 배송사업을 하고, 식생활이나 양성평등, 컨설팅 등 당장 가능한 자원이 있는 주제부터 강사사업도 시작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풀타임이 아니라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확보해 돌봄, 여행, 마을식당 등으로까지 영역을 넓힐 생각이다. 포부가 크다. 얘기를 듣다보니 전망도 좋아 보인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황경자] 전 시민의 조합원화? 정말 의지할 만한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최주영] 시작을 함께 했으니까 끝까지 함께 해서 좋은 끝을 봐야죠.

[남궁순금] 즐겁게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재미있게 나이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고령화 저출산의 시대에 각 개인은 외로운 존재다. 1인가구가 늘어날수록 더불어 살기가 중요하다. 남궁순금 씨는 그것을 “인간적인 배려가 있는 나눔, 서로 돌봄 서비스”라고 했다. 혼자 꾸는 꿈은 망상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기술이 진보할수록 소외(疏外)가 더 심화되는 이 역설의 시대에 춘천워커즈협동조합이 당차게 반기(反旗)를 들었다. 부디 그 아름다운 반란(反亂)이 성공하길 진심으로 빈다.

전흥우(편집인)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